[동아광장/임채청 칼럼]‘마지막 도전’

  • 입력 2005년 3월 29일 19시 08분


“대통령의 마지막 도전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재작년 가을 노무현 대통령이 ‘구(舊) 시대의 막내’를 자처했을 당시 한 측근은 사석에서 그렇게 뜻풀이를 했다. 기득권에 대한 도전, 언론에 대한 도전, 역사에 대한 도전 등 끊임없는 도전의 종착역은 헌법에 대한 도전이라는 얘기였다.

참여정부의 ‘호적상 이름’은 6공의 제4기 정부. 5공 이전엔 대통령 이름이 4명이나 등재된 공화국 호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6공은 가장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6공이 노 대통령에서 대가 끊길 듯싶다. 헌법에 대한 도전이란 1988년 출범한 제6공화국을 닫고,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同床異夢의 개헌론▼

정치권 분위기를 보면 헌법에 대한 도전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물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까지 공공연히 개헌을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본격적인 추진 시기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 대체로 지방선거 이후인 내년 하반기를 꼽는다.

그러나 공화국의 틀을 다시 짜는 개헌이 그리 만만할 리 없다. 아직 갈 길이 먼데 여야가 공히 풍선부터 띄우는 것은 국가나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된 명분 말고 정파적 이해가 얽힌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인다. 당장 손에 잡히는 게 하나 있다. 개헌론을 매개로 한 정계 개편에 대한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다. 각 정파가 정계 개편을 통해 지금보다 유리한 고지에서 2007년 대통령선거를 맞으려는 것이다.

상처투성이의 헌정사는 개헌이 정계 개편의 강력한 동인임을 보여준다. 공화국의 숫자가 바뀌는 전면 개헌을 전후해선 예외 없이 정변이 일어나거나 그에 못지않은 정치권 재편이 있었다. 때로는 개헌론 자체만으로 대규모 정계 개편이 촉발되곤 했다. 차기 정권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그래서 미래에 대한 각 정파의 불안감이 클수록 개헌론의 위력은 크다.

현 상황 역시 동일한 관점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고건 현상’은 각 정파의 정치적 기초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가늠케 하는 척도다. 정당에 몸담고 있지도 않고 차기 대선에 대한 명시적 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그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야의 모든 대통령후보감을 지속적으로 압도하고 있는 현상은 현 정치권에 나라의 미래를 맡기고 싶지 않은 국민의 준엄한 경고인 것이다.

개헌 성사 여부는 속단할 순 없지만 어떤 경우든 2007년 대선이 현재의 구도로 치러질 것 같지는 않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그때까지 온존할지도 미지수다. 당이 쪼개질 가능성은 열린우리당 쪽이 커 보이지만 2002년 대선 때 봤듯이 그것이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직의 역동성인데 그것은 한나라당 쪽이 분명 열세다.

▼與攻野守의 뻔한 결과▼

1997년 대선 때나 지금이나 한나라당의 문패는 같은 반면 여당은 그 사이 두 차례나 집을 헐고 새로 지었다. 이 같은 과감한 자기 변신이 2002년 대선과 작년 총선의 주된 승인이었다. 반면 문패 하나 가는 것도 힘겨워 하는 한나라당은 비싼 대가를 치렀다. 여권의 현란한 변신은 2007년 대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도전’이라는 표현에는 그런 의미도 내포돼 있다.

“지독한 여당”이라는 박근혜 대표의 비난이 ‘지독하지 못한 한나라당’에 대한 자탄으로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야당이 공격하고 여당이 수비하는 야공여수(野攻與守)가 상례이나, 현 정권 들어서는 시종 여공야수(與攻野守)였으니 매사에 야당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한나라당 몸 상태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라는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의 진단은 옳다. 야당은 여당보다 지독해져야 자기 몫이라도 챙길 수 있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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