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얘기가 아니다. 1995년 3월 10일자 본보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당시 외무부를 출입했던 기자는 일본의 ‘항의 공한’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일본이 외교 채널을 통해 공식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와 언제부터 외교 공한을 보냈는지 등을 취재했다.
그러나 당시 외무부 관계자들은 “일본의 독도 분쟁 지역화 전략에 말려들게 된다”며 함구했다. 결국 한일 양국이 매년 외교 공한을 통해 독도 영유권 공방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보도 후에도 외무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무시 전략을 고수했다.
최근 상황을 보면서 당시 좀 더 적극적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을 이슈화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부가 ‘조용한 외교’를 내세우며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상황이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주도면밀한 ‘외곽 때리기’ 작업이 국제 사회에 파문을 불러오고 있다. 일본은 세계지도에 독도를 ‘다케시마’로, 동해를 ‘일본해’로, 대한해협을 ‘쓰시마해협’으로 표기하기 위해 끈질기게 로비해 왔다. 유명 세계지도나 인터넷 사이트 중 상당수가 이미 일본의 주장대로 표기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도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묘사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문제점을 찾아낸 게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터넷 웹사이트 등의 잘못된 표기를 찾아내 바로잡기에 나선 것은 민간외교사절인 ‘반크’ 회원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뒤늦게 ‘전 세계의 지식정보 자료에 남아 있는 식민지 잔재 청산에 정부가 적극 나서라’고 지시했다. 외교통상부도 최근에야 독도 문제 전담대사를 지명했다.
정부의 뒷북치기와 일본의 집요한 움직임을 보면서 100년 전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1876년 운요호사건을 구실로 조선을 강제 개항시키고 30여 년의 치밀한 준비를 거쳐 우리의 국권을 침탈했다. 일본은 청일, 러-일전쟁으로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한 뒤 미국과 태프트-가쓰라 밀약,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묵인 약속을 받고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우리는 일본과 주변 강대국들의 이런 움직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며 허송세월했다.
최근의 상황도 비슷하게 전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일본과 중국의 아시아 패권 장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으며 러시아도 영향력 회복을 위해 틈새를 노리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며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과의 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영향력 확보와 상호 견제를 위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묵인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미국과 북한 핵 해법, 일본과 독도 영유권 및 역사왜곡 문제, 중국과는 고구려사 왜곡 문제 등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은 점점 외톨이가 되고 있지만 정부 내 민족자주파는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 등 명분에 집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교 격랑을 헤쳐 나갈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차수 문화부 차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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