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 칼럼]천황敎徒와 수령信徒

  • 입력 2005년 4월 13일 18시 22분


북은 ‘김일성 수령’의 생일 태양절(4월 15일)로 온통 들떠 있을 것이다. 사후에도 생일이 ‘축제 휴일’이 되는 것은 일본 천황을 흉내 내는 것인가. 일본은 천황 한 명에 공휴일을 하루 더 만드는 특이한 전통을 백년 넘도록 이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북핵문제로 속을 썩이다 요즘은 반일(反日)로 들끓고 있다. 미국 러시아도 북핵 6자회담의 멤버이며, 지금 아시아에 일고 있는 반일 감정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그 반일은 일본의 열렬한 ‘천황교도’라고 할 우익이 부른 분란이요, 북핵은 ‘수령신도’들이 똘똘 뭉쳐 과시하는 대량살상 협박이다.

우리는 참 재수 없게도 악우(惡友) 사이에 끼어 있다.

천황과 수령이 사촌쯤이라고 하면 북과 일이 다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들어 보시라.

세습체제에 신격화가 한 치도 틀리지 않다. 천황은 125대에 걸친 세습을 자랑하고, 북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전무후무한 부자(父子)세습을 취하고 있다. 수령 부자의 ‘말씀’은 경어체로 전달한다. 선진 일본의 매스컴이지만 천황의 발언은 특별히 경어체로 전달한다. 황실에 세 살짜리 손녀가 있는데,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도 경어체로 보도된다.

▼北정신구조 닮아가는 일본▼

한국의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의 ‘미녀 군단’이 비에 젖은 ‘장군님’ 초상화를 보고 울고불고 항의한 적이 있다. 일본 대신(大臣·장관)을 지낸 A 씨가 나에게 ‘북한 처녀들의 코미디극을 아느냐’고 비웃듯이 그 얘기를 꺼냈다. 내가 “천황의 전쟁책임을 말하던 나가사키 시장이 우익의 총을 맞는 건 어떻습니까? 황실에 대한 경어도 그렇고”라고 하자 그는 멋쩍게 웃고 말았다.

오늘의 북은 1945년 패전을 앞둔 일본의 처지, 정신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빼닮았다.

외교적 고립으로 국제사회에서 왕따 신세다. 군부가 모든 것을 틀어쥐고 통제한다. 언론통제도 꼭 같다. 대중은 대본영 발표(일본)나, 노동신문 평양방송(북한)만 접할 수 있다. 생화학무기를 만들고 이판사판의 자해(自害)공갈로 치닫는 것도 그대로다. 북의 사린가스, 일본의 731세균전부대가 그 증빙이다.

‘미제의 각을 뜨자’는 북의 처절한 구호는 일본인들이 말해온 ‘귀축미영(鬼畜美英)’과 닮지 않았나. 북이 떠들어댄 서울 ‘불바다’도 어쩌면 일본인들이 패전 전에 “1억이 불덩이가 되어 미제에 대들자”던 것과 통하는 것만 같다.

북의 체제보장 요구는 더 그렇다. 태평양전쟁이 패전으로 기울자 일본은 국체호지(國體護持)라 하여 천황제만 살려 달라고 연합국에 빌었다. 더 기막힌 것은 일본이 국체호지를 애걸하며 1945년 7월의 포츠담선언을 받지 않는 바람에 한반도가 둘로 쪼개졌다는 사실이다. 그해 8월 들어 소련이 잽싸게 참전으로 돌아서고, 일본의 8·15 항복으로 소련군이 북에 진주한다. 일본 천황제가 북의 수령제를 낳았다는 결론이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북은 이제 ‘수령체제’를 보장해 달라고 협박도 하고 구걸도 한다.

그 흘러간 인과(因果)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두 惡友에 낀 運없는 한국▼

오늘날 일본이 북한의 납치나 핵개발과 미사일발사 위협을 내세워 무장을 강화하고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헌법을 고치려 하는 것이 너무 아이러니해서다.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도 자위(自衛)전쟁이었다고 우기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범(戰犯)을 기린다. 그래서 한국 중국 그리고 아시아가 분노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배부른 나라 일본. 그들의 미숙한 정신구조가 가장 배고프고 굶주리는 북한을 닮아가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정신과 인식의 문제는 외부에서 고쳐주기도 어렵다. 천황교도와 수령신도 사이에 낀 우리 신세가 괴롭기만 하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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