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라니,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어 노태우 정부의 7·7선언,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그리고 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에 이르기까지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한국이 북한을 흡수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미국이 압살하려 하기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최근 2, 3년 사이에 제기된 일이다. 고농축우라늄을 통한 핵무기 개발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이 압살하려 하기 때문에 자위적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盧대통령의 ‘저속도 통일론’▼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결국 남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북 간의 경제 격차가 30배가 넘고 북한 국민총생산(GNP)이 우리 국방예산보다 적은 상황에서 핵무기만이 흡수통일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혀 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 지인의 주장은 매우 정확한 지적일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독일 방문 기간 중 북한에 대해 봇물 터지듯 많은 이야기를 토로했다. 수많은 이야기 중 북한에 대한 쓴소리가 크게 화제가 되었지만 일관된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노 대통령의 일관된 메시지는 절대 흡수통일을 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이는 이른바 ‘4단계 통일론’ ‘저속도 통일론’으로 표현됐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북한의 내부 조직적 역량으로 볼 때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낮고,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는 붕괴를 조장하지 않으며, 독일의 흡수통일과는 다른 장기적이고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이중삼중으로 흡수통일할 생각이 없음을 천명한 셈이다. 이것은 북한이 조속히 회담장에 나와 안심하고 핵을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이지만 솔직한 우리의 입장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또 북한이 중국, 베트남식 개혁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북한은 베트남 방식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북한은 미국의 압살정책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했고 핵무기고를 늘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트남도 미국과 전쟁을 했으며 통일 이후에도 외부의 체제 위협을 들어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철저한 통제정책을 고집하였다. 그 결과 베트남의 경제는 동남아에서 가장 낙후되었고, 동남아 이웃들에 고립되었으며, 수많은 국민이 나라를 버리고 보트피플이 되어 바다에서 상어의 밥이 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트남의 지도자들은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베트남은 낡은 냉전적 사고방식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개혁 개방을 위한 ‘도이모이’ 정책을 취하였고 놀랍게도 자신을 압살하려 한다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 꾀하였다. 미국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스스로가 미국이 내건 까다로운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들을 충족시켜 갔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에서 주목받는 활기찬 베트남 경제가 현실화되었다.
▼核포기하고 6자회담 참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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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도 항상 우리의 문제점을 이유로 시간을 끌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국제사회의 인내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노 대통령의 메시지는 우리와 국제사회는 열린 마음으로 북한이 제기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응할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조속히 회담장으로 나와 협상을 통해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핵을 포기한다면, 안전보장을 하고 개혁 개방을 지원한다는 점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믿고 더 이상의 주저 없이 6자회담에 나와 핵무기 포기를 선언하여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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