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강변, 우리는 독일과 다르다=14일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야당 의원 질문에 “유대인을 말살한 나치의 범죄 행위와 일본이 전쟁 때 했던 행동은 다르고, 독일은 나치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게 가능했다”며 “국가 정치 상황이 다르므로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다”고 강변했다.
일본 군국주의가 인접국에 피해를 끼친 건 인정하지만 이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견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논리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독일처럼 떠넘길 대상이 없는 것은 당시의 전범이 지금도 명목상 국가원수로 군림하고 있는 일본의 기이한 현실을 스스로 고백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독일은 패전 후 열린 전범재판에서 대학살과 전쟁을 주도한 핵심 간부들을 처형했지만 일본은 전쟁의 최고 지휘자이자 핵심 전범인 일본 국왕이 전범 재판에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국왕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한발 더 나아가 일왕을 ‘국민통합의 중심’으로 명시하는 헌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일본의 궤변과 맹점=일본 외무성의 한 관계자는 15일 “일본 정부도 침략을 받은 국가에 대한 전후 보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일본이 독일보다 덜 반성한다는 논리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그 근거로 일본의 전후 처리 방식을 규정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이후 필리핀 미얀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평화조약을 맺고 국가 차원에서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한 사실을 들었다.
그는 “독일이 사죄하는 부분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이라며 “독일이 프랑스 영국 등 교전 상대국에 배상한 것은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이 또한 ‘파렴치한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독일-프랑스, 독일-영국과 일본-한국, 일본-중국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가 식민지를 놓고 다툰 사이인 반면 한국과 중국, 동남아는 일방적으로 일본의 무력 침략을 받거나 식민지 지배로 고통을 받았는데 그런 역사적 성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옛 일본군이 1937년 중국 난징(南京)에서 수십만 명을 무참히 살해한 난징대학살과 731부대가 한국인, 중국인, 만주인 등을 상대로 세균전 인체실험을 한 사실 등을 감안하면 ‘나치와 일본은 다르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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