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타결된 쌀 협상 관련 문건의 언론 공개 여부를 놓고 여야 의원들 사이에 4시간 이상 실랑이가 벌어졌다. 문제의 문건은 야당 의원들이 농림부에 공개를 요구한 5개국과의 부가합의 이행계획서. 농민 단체들이 주장하는 쌀 협상 과정의 이면 합의 여부를 확인해 줄 수 있는 자료였다.
박홍수(朴弘綬) 농림부 장관이 “외국과의 협상 문건이므로 국제관례에 따라 언론 비공개를 조건으로 열람해 달라”고 요구했고, 여당 의원들도 이를 지지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은 “협상도 끝난 마당에 국민의 의혹만 키운다”며 공개 방침으로 맞섰다.
야당 의원들이 회의장 밖에서 문건의 공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대책을 숙의한 뒤 방침을 밝히면, 이번에는 여당 의원들끼리 다시 모여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연출됐다.
지루한 여야 협의 끝에 문건을 언론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열람이 허용됐다. 그러나 문건 열람 후 질의가 시작되자 상당수 의원은 자리를 떴다. 남아 있던 몇몇 의원들도 40분 정도의 질의 끝에 회의를 마쳤다.
오전 10시에 열린 상임위가 문제의 본질인 문건 내용에 대한 질의는 제대로 하지 않고 부수적 사안인 언론 공개를 놓고 싸우다 끝난 셈이다.
이를 지켜보던 한 입법조사관은 “국회가 원래 곁가지 싸움만 계속하다 막상 중요한 질의 응답 부분은 흐지부지돼 버리는 곳 아니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원…”이라며 혀를 찼다.
농해수위뿐만이 아니다. 4월 임시국회가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민생을 위한 진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주 대정부질문에서 본회의장 자리를 지킨 의원은 전체의 30%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앞에 나서서 개혁을 부르짖는 소장파보다는 나이 든 의원들이 회의장을 지키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번 임시국회가 생산성 없는 ‘불임(不姙)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16대 국회에서 무려 1000건가량의 법안이 제때에 처리되지 못해 결국 폐기된 전례가 되풀이될까 걱정이다.
이정은 정치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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