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청와대는 24일 국정상황실의 늑장보고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는 형식을 취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를 감추고 있을 수 없으니 마지못해 ‘자진 공개’한 것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천호선(千皓宣) 국정상황실장은 지난해 11월 국정상황실(당시 실장은 박남춘·朴南春 현 인사제도비서관)이 러시아 유전사업 경위를 조사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이달 18일 뒤늦게 민정수석실에 통보했다. 그것도 검찰에서 확인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감사원의 조사과정에서 이 사업을 주도한 철도청의 왕영용(王煐龍) 사업본부장이 “(국정상황실 행정관인) 서모 씨로부터 경위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고, 검찰은 18일 서 행정관에게 그런 사실이 있는지를 문의했다. 천 실장은 서 행정관으로부터 검찰 관련 보고를 받고 나서야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판단해 민정수석실에 알렸다는 것.
올해 1월 부임한 천 실장이 ‘지난해 11월의 국정상황실 조사’ 사실을 서 행정관으로부터 처음 보고받은 것은 지난달 31일. 이때 즉각 내부 보고를 하지 않은 데 대해 천 실장은 “비리의혹과는 무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명쾌하지는 않다. 지난달 31일 시점은 그 4일 전 이 사건 보도가 처음 나온 후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의 연루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사건이 확산일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박남춘 실장’ 당시 국정상황실의 경위 조사 결과 처리방식도 의문을 낳고 있다. 당시 조사 결과를 산업정책비서관실에 e메일 통보하는 것으로 종결 처리한 것이 과연 적절했느냐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청와대는 비서실장 주재 일일현안점검회의가 있고, 여기에는 비리 문제를 다루는 민정수석비서관도 참여하기 때문에 보고가 이뤄졌다면 지금 제기되는 여러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신속히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지난해 11월 국정상황실의 경위조사에서 단순한 사업 타당성 문제만 다뤄진 것이나, 지난달 말 언론 보도 이후에도 내부 보고가 지연 누락된 것은 사건의 실체를 비켜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이광재(2003년 2월∼10월)-박남춘(2003년 11월∼2005년 1월)-천호선(2005년 1월∼ )으로 이어지는 ‘3인의 전·현직’ 국정상황실장이 모두 연루 혹은 보고 누락 의혹을 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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