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제42회 ‘법의 날’…법안의 탄생과 죽음

  • 입력 2005년 4월 25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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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삼륜’의 피아노 삼중주25일 제42회 법의 날을 맞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기념식 2부 문화행사에서 피아노 3중주를 구성해 연주하고 있는 박지영 변호사, 권영준 판사, 장윤영 검사(왼쪽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법조인들은 이날 법의 날 기념행사를 일반인과 재소자까지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 꾸몄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법조 삼륜’의 피아노 삼중주25일 제42회 법의 날을 맞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기념식 2부 문화행사에서 피아노 3중주를 구성해 연주하고 있는 박지영 변호사, 권영준 판사, 장윤영 검사(왼쪽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법조인들은 이날 법의 날 기념행사를 일반인과 재소자까지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 꾸몄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25일은 제42회 법의 날. 최근 각종 새로운 법안을 만들려는 시도가 활발해지면서 우여곡절을 겪는 법 제정 과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법안의 발의에서 국회 본회의 통과에 이르는 ‘법안의 탄생’을 한 민생법안의 1인칭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나는 ‘실종아동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다.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나는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내가 태어나면 실종된 어린이나 장애인의 DNA 유전자 정보가 전국 보호기관의 전산망에 공유돼 이들을 빨리 찾아내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나는 ‘수정란’ 단계에서 출산 직전의 ‘태아’로 자라기까지 힘든 시간을 거쳐야 했다. 인권침해 논란 때문이었다.

▽잉태=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8세 이하 실종 아동은 연평균 30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찾는 시간이 3일 이상 장기화되는 아이는 연평균 200여 명. 1986년 이후 아직까지 찾지 못한 어린이도 700여 명이다.

전단지를 뿌리며 직접 거리를 찾아 헤매는 부모들 사이에서 “효율적인 미아 찾기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지난해 5월 열린 국회의원과 실종 아동 부모들의 간담회를 계기로 법 제정이 시도됐다.

우선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실종 아동의 부모 6명을 만나 문제점을 듣고, 보건복지부와 경찰서에서 현황을 파악했다. 이를 바탕으로 7월에 법안 초안, 즉 ‘수정란’ 상태의 내가 만들어졌다. 나는 본회의에 보고된 뒤 곧바로 해당 상임위원회(보건복지)에 상정됐다. 전문위원의 검토를 거친 나는 소위원회의 법안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고(産苦)=“이대로는 가결 못한다. 인권이 걸린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열린우리당 문병호·文炳浩 의원)

“이제 와서 그런 말씀 하시니까 황당하다.”(한나라당 고경화·高京華 의원) 올해 2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 법안심사 소위원회. 소위원장인 문 의원은 “무작위 DNA 검사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고, 유전자 정보가 남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와 진보네트워크 같은 시민단체에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공청회와 몇 차례의 회의를 더 거치고서야 나는 다음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다. 논란이 됐던 DNA 검사는 꼭 당사자의 허락을 받도록 절차가 엄격해졌다.

법사위에서도 ‘법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 드디어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간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나는 비로소 태어난다. 수정란(초안)이 만들어진 지 10개월 만이다. 대통령이 나의 탄생을 공포한 뒤 관보에 실리면 ‘출생신고’까지 마무리돼 법으로서 효력을 갖게 된다. 어서 태어나 실종 어린이와 장애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수명=내가 얼마나 살지 나는 모른다. 국회의 폐지안이 상정돼 통과시키는 때가 사망선고를 받는 날이다. 그러나 한번 태어난 법의 생명은 끈질기다. 대부분이 죽지는 않되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식물인간’ 상태로 남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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