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韓63%-日22% “상대국 싫다”…20년來 최악

  • 입력 2005년 4월 26일 18시 29분


▼3국관계▼

과거사를 바라보는 한국 중국 일본 국민의 시각에는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갖고 있는 상반된 인식구조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한중 양국에서는 일본의 침략이라는 쓰라린 역사를 직접 경험한 노년층일수록 과거사를 잊지 못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가해자는 잊어도, 피해자는 못 잊어’=한국인의 46%와 중국인의 63%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나 중일전쟁 등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가 ‘한일 또는 중일 관계에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했으나, 일본인은 24%만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일로 한국인과 중국인은 ‘납득할 만한 일본의 사죄’를 꼽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또는 중일전쟁을 직접 겪은 한국과 중국의 60대 이상에서는 절반 이상이 ‘일본의 사죄’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반면 일본인은 ‘폭넓은 교류’(29%)와 ‘대일(對日) 의식 개선’(23%)을 더 중요시했고 일본의 60대 이상은 10.6%만 ‘사죄’를 꼽았다.

식민지 시대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도 일본인의 50대와 60대는 각각 38%와 35%가 ‘이미 해결됐다’고 응답해 평균치인 30%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인은 모든 연령대에서 90% 이상의 절대다수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특히 한국인의 67%는 앞으로도 한일 간에 역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대답해 뿌리 깊은 대일 불신을 드러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대한 인식도 극명하게 대비됐다. 한국인(92%)과 중국인(91%)은 거의 모두 반대했으나 일본인은 54%가 찬성했다. 일본 자민당 지지자의 경우 72%가 찬성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의 60% 정도가 야스쿠니 신사를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일본인의 66%는 단순히 ‘전사자를 추도하는 곳’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북아 국민감정은 역대 최악”=한일관계에 대한 인식은 양국 국민 모두 최근 20년 동안의 조사 중 가장 부정적이었다. 한국인의 94%와 일본인의 61%가 ‘한일관계가 잘 돼가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잘 돼가고 있다’는 대답은 각각 6%와 25%에 그쳤다. 이는 1984년부터 7차례 실시한 여론조사 중 가장 낮은 수치였다.

양국 국민 모두 상대국에 대해 ‘싫다’고 응답한 비율(한국인 63%, 일본인 22%)도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한국인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일본이 싫다’는 사람이 많았다. 60대 이상은 76%가 ‘싫다’고 했다.

다만 일본의 최신 대중문화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20대는 15%가 ‘일본이 좋다’고 답해 다른 연령대의 ‘좋다’는 응답률(3∼7%)보다 높았다.

일본인의 경우 한류 열풍의 영향권에 있는 20∼40대는 ‘한국이 좋다’는 대답이 ‘싫다’보다 상대적으로 많았으나, 50대 이상은 ‘싫다’는 쪽이 더 많았다.

중일관계도 썩 좋지 않았다. 중국인의 75%, 일본인의 61%가 ‘중일관계가 잘 돼 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중국인의 64%와 일본인의 28%가 상대국을 ‘싫다’고 답했는데, 이 또한 역대 최고치였다. ‘좋다’는 응답은 일본인의 10%, 중국인의 8%에 불과했다.

반면 한국인의 51%와 중국인의 82%는 ‘한중관계가 잘돼 가고 있다’고 응답했다. 각각 일본과의 극심한 갈등으로 인해 반사적인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관계가 좋다’는 응답이 중국인보다 한국인에게서 낮게 나온 것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움직임이 미친 영향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경제문제▼

‘중국이 두렵다.’

이번 조사에서는 중국의 경제성장에 대한 한국인의 우려가 두드러졌다.

우선 ‘국가 경제상황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중국인의 78%가 ‘좋다’고 답변했다. 같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일본인이 16%, 한국인이 6%에 그치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중국의 경제성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한일 양국이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인의 의식에 깔린 것은 ‘쫓기는 자의 불안’이었다. ‘중국의 경제력이 언제쯤 세계 1위(현재 세계 7위)가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31%가 10년 이내, 36%가 적어도 25년 안에는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일본은 ‘앞선 자의 여유’를 과시했다. 중국이 10년 이내에 세계 1위의 경제대국에 올라설 것이라는 답변은 12%에 그쳤고, 아예 불가능할 것이라는 답변도 52%에 달했다.

중국인들 스스로는 ‘50년 이후’라는 답변이 21%로 가장 많았고 ‘불가능하다’도 25%나 되는 등 미래의 경제전망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자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한국은 ‘안 좋다’(57%)가 절반 이상이었지만, 일본은 ‘좋다’(46%)가 ‘안 좋다’(32%)보다 많았다. 안 좋은 이유로 한국은 △중국의 경기와 환율의 급격한 변동에 따른 악영향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증대를 꼽은 반면 일본은 △환경파괴의 주변국 확산 △중국의 군사대국화 등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경제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묻는 질문에도 한일은 중국과 미국을 꼽은 반면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동남아 순으로 선택했다.

이번 조사에서 한국인의 63%는 중일 경제관계가 깊어졌다고 응답했다. 중국인의 81%는 한일 경제관계가, 일본인의 57%는 한중 경제관계가 깊어졌다고 밝혔다.

경제활동으로 파괴되는 환경 문제에는 3국이 모두 관심을 갖고 환경보호 실천 의지를 밝혔다. ‘지구환경 현상에 대한 관심도’는 3국 응답자의 76∼85%가 ‘내 문제로 느껴진다’고 답했다. 한국인의 90%는 전기나 자동차의 사용을 제한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문화교류▼

한류(韓流)는 중국 일본 두 나라 국민이 한국을 보는 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번 조사 결과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일본인은 전체의 33%(자주 본다 7%, 가끔 본다 26%)인 것으로 나타났다. 20, 30대가 주를 이뤘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았다.

한국 대중문화를 접한 일본인 가운데 한국에 대한 친밀감이 늘었다고 답한 사람은 69%에 이르며 여성(71%)이 남성(66%)보다 많았다.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가장 관심 있는 정보로 정치 외교(29%)에 이어 음식 건강법(26%)을 꼽았다. 연예 스포츠 관련 정보도 22%를 차지했다. 중국에 대해 관심 있는 정보로 정치 외교(32%), 경제(28%), 역사 문화(27%) 등을 꼽은 것과는 달리 대중문화 분야의 비중이 높다.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는 한국인은 24%(자주 본다 3%, 가끔 본다 21%)로 일본의 한국 프로그램 시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일본 프로그램을 본 뒤에도 일본에 대한 친밀감이 늘지 않았다는 대답은 58%나 됐다. 여기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높아진 반일감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잘된 일’이라는 답변은 63%로 2000년의 57%에 비해 높아졌다.

중국인의 경우 ‘최근 5년간 한국과 관련해 가장 많이 증가한 활동’으로 57%가 한국 영화나 드라마 시청을 들었다. 19%는 ‘한국 상품 구매’를, 12%는 ‘한국인과의 만남’을 꼽았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어떻게 조사했나▼

한중일 3국 모두 3월 중에 만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일대일 개별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는 한국 1500명, 일본 1781명, 중국 2160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2.5%포인트. 질문지는 아사히신문 세론(世論·여론)조사부와 본보 여론조사팀이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10여 차례 협의를 통해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와 ‘배상’ 같은 용어는 일본 조사 시 ‘식민지’와 ‘보상’ 같은 일본 측 용어로 바꾸도록 양해됐다. 한국은 코리아리서치센터(KRC), 일본은 아사히신문 세론조사부, 중국은 사회과학원 스옌(世硏)조사센터가 각각 면접조사를 담당했다.

나선미 전문위원 sunny6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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