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정재호]균형점 찾기와 균형자 되기

  • 입력 2005년 4월 2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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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에 대한 언급 이후 이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더구나 올해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한국이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는 의미의 대통령 연설, 한일 간에 점화된 외교 분쟁, 그리고 윤광웅 국방장관의 “한중 군사교류를 한일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발언 등이 균형자론의 단서로 제시되고 있다.

건국 이후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심해 왔고 그 해답으로 안보 유지와 번영 추구라는 두 가지 목표에 매달려 왔다. 국민의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한 긴장 완화에 매진했다면, 참여정부에 와서야 비로소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평화와 번영을 위한 동북아 중심국가’ ‘협력적 자주국방’, 그리고 ‘동북아 균형자’ 등의 개념인 것이다.

▼현안별 균형자 역할 수행 가능▼

논란의 규모에 비해 균형자론의 내용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위에 언급한 발언들이 체계적으로 준비된 것이었는지도 확인된 바 없다. 3월 3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내놓은 설명에 따르면 “근대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미래 비전에 근거하여 세계 10위권의 중견 경제력…한미동맹을 기반으로…그리고 전쟁을 추구해 본 적이 없는 평화세력으로서 지역평화에 대해 떳떳하게 평화번영을 촉진하는 균형자의 역할을 해 나가려 한다”로 귀결된다. 기실 ‘균형자’라는 단어 하나를 빼면 그리 문제될 것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국제정치학의 엄밀한 이론적 잣대를 들이대면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균형자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한국의 국력-절대적 능력에서나 타국의 인식 속의 능력에서도-이 못 미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균형자론을 반드시 학문적 잣대로만 평가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나아가 군비나 경제의 총량적 의미가 아닌 현안별 균형자의 역할을 한국이 수행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예컨대 북핵 문제의 해결 방식에 있어 한국의 방침을 미국과 중국 모두 중시하고 있는 점이나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있어 한국이 갖는 무게는 간단히 생각할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은 지금 우리에게 매우 절실하다. ‘협력적 자주국방’이 빈 구호가 아닌 반드시 이루어야 할 당위의 목표라면 한미동맹은 무엇보다도 필수불가결한 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과 조건에 관계없는 ‘동맹절대주의’의 주장이 실상 한미관계를 경색시켜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의 ‘강화’가 곧 미중관계의 악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한국의 딜레마나 한일관계의 태생적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의 고민은 설득력이 없지 않다.

우리의 외교는 대개 낙관적인 관점에서 전망되고 설계되며 수행되는 폐습을 가지고 있다. 한미동맹만 강화되면 모든 것이 다 풀린다거나 역사왜곡은 지방단위에서 이루어진 것일 뿐이라거나 미중관계는 악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거나 하는 ‘근거 없는 바람’ 등을 가리킨다. 과연 동북아의 미래 상황을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우리 외교 전담 부서에서는 이러한 위기 의식을 별로 감지하기 어렵다. ‘지체부조화(肢體不調和)’의 문제가 심각한 듯하다.

▼쉽게 속내 드러내진 말았어야▼

한 가지 분명히 지적할 것은 균형자론에 담겨진 고민에 상당 부분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이 시점에서-여전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협력적 자주국방’을 위해 미국과의 실질적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꼭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속내를 드러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이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착실히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방식이 국익을 위해 더 바람직하지는 않았을까. 현재로서는 ‘균형점 찾기’가 우리의 핵심 목표여야 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는 말뿐이 아닌 진정한 ‘균형자’가 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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