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처 ‘언론 블랙리스트’ 만드나

  • 입력 2005년 4월 27일 19시 10분


국정홍보처가 국민 여론을 수렴해 정부 정책의 질을 올리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정책보도 모니터링’ 시스템이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27일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건수와 결과를 각 부처 업무평가에 적극 반영하고 있으며, 각 부처의 실적을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각 부처간에 ‘실적 올리기’ 차원의 과잉 대응을 부추기고 있는 데다 언론보도를 분류할 때 ‘오보’와 ‘건전비판’을 나누는 기준이 자의적이어서 언론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보’와 ‘건전비판’ 사이=언론보도가 나오면 정부 43개 중앙부처 과장급 이하 정책실무자는 관련 기사를 검토해 △건전비판 △정책참고보도 △문제성 보도 △오보 등 4개 범주로 분류한다. 이같이 분류된 내용을 온라인 DB에 직접 입력하고, 대응 과정을 정리해 종합 관리하는 것이 정책보도 모니터링 제도의 핵심.

그러나 공무원들이 언론보도를 ‘건전비판’으로 분류하려면 스스로 추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의적인 판단에 치우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언론사가 정책의 문제점을 ‘건전하게’ 비판해도, 실무자가 ‘악의적’이라고 판단하면 ‘건전비판’도 ‘문제성 보도’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오보 대응’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정부가 언론보도를 일방적으로 ‘오보’라고 규정해 정부 중앙부처의 공무원들에게 가감 없이 공개하면 해당 언론사와 기자의 명예를 훼손할 소지가 크다.

그러나 국정홍보처 이백만(李百萬) 차장은 “초기에는 분류기준에 문제가 있었으나 이제는 사실관계의 오류와 쌍방 이해 당사자의 주장 소개여부 등 언론중재위원회의 오보 판정 기준을 원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 부처 간 경쟁심 유발=국정홍보처는 각 부처를 평가하는데 언론보도 대응을 포함한 ‘언론홍보’ 실적에 100점 만점에 40점을 배정해 자칫 ‘과잉 대응’을 부추길 우려도 낳고 있다. 언론홍보가 △매체홍보(30점) △기획홍보(25점) △홍보혁신(가산점) 등 보다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중앙부처의 한 당국자는 “지난해 부처평가는 언론 대응의 강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 면이 있다”며 “이전 같으면 대응하지 않을 사안도 부처 평가가 좌우되기 때문에 무리하게 ‘오보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된 데는 부처간 경쟁심을 부추겨 언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정홍보처 관계자는 “온라인에 띄워 놓으면 각 부처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감안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홍보처 인병택(印炳澤) 홍보협력국장은 “국정홍보처는 각 부처에서 실적 위주로 오보 대응을 하는 데 대해 옥석(玉石)을 가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1월부터 4개월간 실시해 정착 초기단계이므로 보완할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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