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월 이래 핵 보유 선언→5MW 원자로 가동 중단→단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쳐 이젠 ‘핵실험 카드’까지 꺼내 흔들어대고 있다. 이참에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제스처다. 극한 전략으로 수세(守勢) 국면을 반전시키는 전형적인 협상술이기도 하다.
미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미 정부 관계자들의 ‘북한 때리기’ 발언이 연일 계속되는 것부터가 전례 없는 일이다. 엊그제는 북-미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핵문제뿐 아니라 인권, 탄도미사일, 마약 거래, 위조지폐 등도 해결돼야 한다”는 대북협상특사의 발언이 나왔다. 북한에 ‘백기(白旗) 들고 투항하라’는 말과 같다.
양쪽 모두 중증(重症)의 도그마에 빠져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북한은 ‘벼랑 끝 전략’이 아직도 통한다는 착각에, 미국은 여차하면 북한도 이라크처럼 밀어버릴 수 있다는 자만(自慢)에 사로잡힌 게 아니냐는 얘기다.
이런 식이라면 11년 전의 위기가 재연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도 든다. 1994년 6월 백악관에서는 한국 정부도 모르게 북폭(北爆) 계획을 논의하다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중단했다. 지금의 백악관 주인과 보좌진은 그때보다 훨씬 강경한 사람들이다. 당장은 카터 전 대통령의 대역(代役)을 맡아 줄 인물도 떠오르지 않는다.
양쪽 모두 현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미국이 예전의 미국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진부한 협박에는 꿈쩍도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북한은 언제까지 상식과 순리, 세계정세의 흐름을 거슬러 자기 고집만 피울 것인가.
미국도 ‘북한 때리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헤아려야 한다. 한반도는 세계 4대 강국의 힘이 교차하는 곳이다. 어느 일방의 섣부른 실력 행사는 연쇄적인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 가운데 미국식 민주주의를 전수받아 체화(體化)에 성공한 보기 드문 나라다. 한미동맹이 예전 같지 않다지만, 이런 한국을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
6월을 잘 넘기는 것이 중요하다. 6월은 6자회담이 중단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다. 미국의 인내심이 빠르게 무너지고, 북한의 핵실험 여부에 대한 주변국들의 촉각이 최고로 예민해질 때다. 6월을 무사히 넘기려면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달라져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어정쩡하고 실효성 없는 대북(對北) 유화정책으로 지난 2년 반을 허송했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과 미국에 대한 영향력도 거의 소진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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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기회는 있다. 6월에 갖기로 했다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노 대통령은 이 정상회담을 북핵 공조 복원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북에 대해 ‘얼굴을 붉히는’ 말을 해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또 한 번의 결정적인 ‘위기의 6월’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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