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이 주목받는 것은 병풍이 16대 대선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대법원에서 기각당하기는 했지만 대선 직후 ‘주권찾기 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16대 대선 무효 소송을 내면서 제시한 논거의 하나도 바로 병풍이 조작됐다는 것이었다. 병풍뿐이 아니다.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의 소속 정당이던 민주당이 제기한 이회창 씨의 ‘20만 달러 수수설’과 부인 한인옥 씨의 ‘기양건설자금 10억 원 수수설’도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문제는 현재 정부와 여당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당시 노 후보 진영의 핵심 인사들이 김 씨의 폭로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이다. 2002년 8월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이해찬 국무총리가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 수사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를 거론해 달라는 요청을 ‘누군가’로부터 받았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의구심을 증폭시켰던 대목이다. 심지어 당시 여권이 김 씨를 매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지만 결국 정쟁(政爭)에 묻혀 모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병풍은 분명히 16대 대선의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였다. 혹시라도 ‘아니면 말고’식 폭로로 대선의 판세가 바뀌었다면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와 법치(法治)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와 여권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과거사 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래를 위한 진상규명은 차치하고라도 사과(謝過)라도 하는 것이 최소한 정치 도의에 합당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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