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검사 세무서장이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세무서장이 허물없이 지내던 검사에게 농을 건넸다.
“이 자슥아, 도둑질해서 돈을 얼마나 벌었냐?”
검사는 벽력같이 화를 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냐? 내 명예를 훼손했으니 그냥 둘 수 없어!”
검사는 종이와 펜을 가져오게 했다. 세무서장을 꿇어 앉혔다. 검사는 엄숙하게 “성명!” “본적!” “주소!” 하며 조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의 판사가 나중에 대법관을 지낸 고재호(작고) 씨다. ‘법조 반백년’이라는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다.
이제 그런 검사는 없다. 하지만 수사권력 검사 근성(根性)은 좋든 궂든 살아 있다. 언제 어디서나, 공사(公私)간에 국가형벌권의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프라이드.
유전게이트로 정권 실세(實勢)라는 이광재 의원을 꿰더니, 돌연 이명박 서울시장 면전에도 서슬이 퍼런 칼을 들이댄다. 정권 실세와 야당의 대권후보 유력자를 둘 다 들추어 짹소리 못하게 ‘공평한’ 무력행사를 하는 검찰이다. ‘정치인 뺨치게 정치적인 검사’라던 검찰 출신 전 의원 H 씨의 한마디는 정곡을 찌른다.
▼사면초가에 몰린 검찰▼
심증(心證)뿐이니 시비할 수가 없다. 형사소송법 개정이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쌍검시위’로 나선건지 어쩐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검찰은 숱한 첩보와 수사 자료를 쌓아 놓고 있다. 그중에서 상층부가 시의적절하게 버튼만 누르면 여론과 정국이 달라지는 수사가 펼쳐진다. 김영일 서상목(야당)을 매달다가 정대철 이상수(여당)에게 오랏줄이 간다. 제 아무리 떼 잘 쓰는 정치권도 할 말이 없다. 수사의 정도(正道)를 걷는다는 데야.
그래서 무소불위(無所不爲)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악명 높은 권력기관,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가 다 사라지고 바뀌었지만 유독 검찰만 초강력 그대로라는 것이다. 검찰은 현직 대통령의 아들들을 잡아 교도소에 넣는 빛나는 전통(?)을 세웠다. 재벌이건 정치실세건 눈치코치 보지 않고 가차 없이 친다. 독재 시절에는 낙선자나 야당만 겨누던 칼이 이제는 ‘살아있는 최고 권력’의 대선 자금도 노린다. 물론 박수 소리는 더 커진다.
그렇다고 검찰의 전비(前非)와 업보가 아주 상쇄되는 건 아니다.
지금 국회의 386의원들을 징역 살린 것도 검찰이다. 실정법 위반이라지만 당한 사람들은 ‘주구(走狗)들’에게 당한 기분이다. 유신의 긴급조치를 만든 것도 검사들이고, 개헌을 주장한다고 잡아 가둔 것도 검사다. 노무현 문재인 천정배 등 정권의 중추를 이루는 변호사 출신과 한승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장 같은 이들이 다 묵은 시절 검찰의 치부(恥部)를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정권 측은 볼멘소리다. ‘가장 썩은 정권 때는 아첨하더니, 가장 맑아진 정권은 못살게 군다’고 한다. 검사들은 ‘상대적으로 덜 썩었다고 면죄부 달라는 것이냐’고 하겠지만.
사개추위와 경찰, 청와대와 시민단체의 사면초가에 휩싸여 우군(友軍)이 없는 검찰이다. 한마디로 ‘임자’ 만난 형국이다. 검찰 출신 의원 J(한나라당) 씨는 말한다. “재벌의 문어발보다 더한 문어발 권력을 지금 검찰이 갖고 있다. 공격을 받는 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몰아치기식 개혁은 곤란▼
그렇다고 정권 측도 일거에 몰아칠 일은 아니다. 안희정 이광재 때문에 나서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한풀이나 감싸기처럼 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야당은 본능적으로 검찰을 비호할 것이다. 사개추위의 형사소송제도 개혁도, 검경 수사권 조정도 야당의 반대로 법제화가 안 되면 허사다. ‘문어발’을 자르되 숨 가쁘게 밀어붙이지 말고, 공청회도 하고 시범지역도 정해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 검찰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정권이 앞장서서 설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말해 주고 싶은 것이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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