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린 의문, 더 커진 의혹=검찰은 유전사업 전반을 김 전 차관이 사실상 주도한 것으로 밝혀내면서 이와 관련해 불거진 여러 의문점은 상당 부분 풀렸다.
하지만 정치권 배후 의혹은 더 커지고 뚜렷해졌다. 상식적으로 김 전 차관이 혼자서 이런 일을 주도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왕영용(王煐龍·구속) 전 철도청 사업개발본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김 전 차관에게 유전사업을 보고했더니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1차적으론 김 전 차관과 친분이 있고 전대월 씨에게 지질학자 허문석(許文錫·해외 잠적) 씨를 소개한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이 ‘배후’로 거론됐다. 만일 이 의원이 김 전 차관과 유전개발 투자에 대해 공모 또는 협의를 했다면 이 의원은 김 전 차관에게 적용된 배임죄의 공범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에서 이 의원에게선 직접적인 돈 거래나 구체적인 공모 혐의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 외에 ‘제3의 실세’가 관련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은 왕 본부장이 지난해 8월 31일 김경식 대통령행정관을 만나 유전사업에 대해 보고한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검찰은 김 행정관의 ‘윗선’을 캐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결정적인 걸 들이대도 김 행정관이 ‘오리발’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1, 2명의 권력 실세가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유전사업이 진행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기명 씨가 몸통?=‘범정부적 프로젝트’나 ‘정권 실세 개입’ 논리는 다소 허점이 있다. 우선 청와대나 여권 실세가 개입했다면 김 전 차관이 굳이 대통령행정관에게 왕 본부장을 보내 보고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김 전 차관 본인이 직접 은행 임원을 만나 대출을 요청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김 전 차관은 또 지난해 9월 직접 이희범(李熙範) 산업자원부 장관을 찾아가 협조를 부탁했다.
정부 차원이나 여권 실세가 개입된 사업이라면 김 전 차관의 이 같은 행동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 전 차관이 판단을 잘못했거나 말 못할 다른 사정이 있어서 이 사건에 말려들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의 배후에 정치권과 철도청을 연결한 지질학자 허 씨가 있고, 그런 허 씨가 해외로 도피하는 데 관여한 인물이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이기명 씨와 허 씨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허 씨가 출국 직전 이 씨를 접촉한 점을 중시하고 있다. 이 씨가 허 씨의 출국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느냐는 것. 이것이 사실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이번 수사의 가장 큰 고비일 것 같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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