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전 수석은 지난달 30일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뜻이라는 메모를 전달받았다”며 그 내용을 소개했다. 메모 내용은 △서남해안 개발사업의 지속 강조 △행담도 개발사업과 서남해안 개발은 무관 △S프로젝트의 성공적 추진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일종의 ‘가이드라인(대응 지침)’인 셈이다. 지난달 25일은 정 전 수석이 S프로젝트에 관여한 사실과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을 만났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의 불똥이 청와대로까지 막 번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할 때 메모 내용은 보기에 따라서는 의혹이 S프로젝트로까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것이기도 하고, 사건의 전말을 분명하게 설명하라는 주문으로도 보인다. 어찌됐건 이는 ‘행담도 개발사업과 S프로젝트는 무관하다’는 청와대 측의 기본 대응방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31일 “이 메모는 간담회장에 있던 동북아시대위원회의 이정호(李貞浩) 비서관이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수석이 이를 ‘대통령이 전한 메모’로 혼동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최근 이 사건이 불거진 뒤 노 대통령은 비공식적으로 “잘못한 게 있으면 솔직히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윤태영(尹太瀛) 대통령제1부속실장이 민정수석실 쪽에 참고사항으로 알려줬다고 한다. 그 후 민정수석실에서 정 전 수석이 기자간담회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비서관에게 전화로 내용을 불러줬고, 이 비서관은 이를 메모로 작성해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정 전 수석에게 건넸다는 것.
청와대 측의 주장은 메모 내용의 일부는 맞고 또 노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직접 작성한 메모는 아니라는 얘기다.
정 전 수석도 31일 전화통화에서 “대통령의 뜻이라는 취지의 문구 같은 것은 없었다. 간담회 도중에 건네주기에 ‘대통령의 뜻인가 보다’라고 나 혼자 생각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그는 메모 내용에 대해서는 ‘△서남해안 개발사업은 기본적으로 호남지역을 먹여 살리는 일이다 △혹시 진행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S프로젝트는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다’라는 세 가지 내용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청와대 측의 설명과는 조금 다르다.
일부 언론의 보도 직후 정 전 수석이 ‘꼬리 자르기’ 식으로 사태를 수습하려는 청와대에 반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청와대 주변에서 한때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정 전 수석 측은 “노 대통령의 지시와 메모 등이 언론에 알려지게 된 데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기자간담회 때 정 전 수석은 정작 메모에 적힌 지침대로 사과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 3일 한국도로공사 측과 김 사장 사이의 중재에 나섰던 것에 대해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수석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은 아닌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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