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정권이 끝나기 전에 한 건 해야겠다는 세력이 생길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즉각 이 총리가 언급한 측근과 사조직의 실체가 무엇인지, ‘발호 사례’가 있는지를 둘러싸고 미묘한 파장이 일었다.
총리실 측은 일단 “일반론적인 얘기”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강진(李康珍) 총리 공보수석비서관은 “정권 중반기가 지나면 그런 일이 생기곤 하는데 미리 막겠다는 일반론적인 경고”라고 했다.
하지만 이 총리의 언급을 단순한 일반론이라고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대통령 측근과 사조직은 노무현 정부가 한번도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예민한 사안이다.
그러나 이 총리는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지고 관리하라’고 강조했다”고 말해 측근과 사조직 문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사전 논의가 있었음을 은연중 내비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 총리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측근임을 자처하는 일부 인사들의 ‘위험한’ 행태에 대한 정보를 이미 상당히 갖고 있으며, 이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던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국회 주변에서는 메가톤급 비리 사건이 줄줄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괴담’이 횡행하고 있다. 특정인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명되기도 한다. 모두 여권 내 실세로 통하는 노 대통령의 ‘대선 공신’들이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2인자’라는 얘기까지 듣고 있는 열린우리당 이광재(李光宰) 의원을 조준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의원은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유전개발 사업에 일부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는 등 정부의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된 것이 사실인 만큼 ‘자중자애’를 당부한 것이라는 얘기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핵심 라인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이 의원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혀 있지 않느냐. 이 총리의 언급이 이광재 라인에 대한 견제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총리의 발언은 결국 ‘이광재 라인’으로 표상되는 비선(秘線)조직의 발을 묶고 ‘공적 시스템’으로 국정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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