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근 그룹의 분화=이른바 ‘노무현 사단’의 원조는 13대 국회 당시 노무현 의원의 보좌진 그룹이다. 당시 이호철(李鎬喆·현 대통령제도개선비서관) 보좌관과 이광재(李光宰·현 열린우리당 의원) 비서관, 천호선(千皓宣·현 대통령국정상황실장) 수행비서 등이 그들.
노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부터 사무장을 했던 최도술(崔導術·전 대통령총무비서관) 씨는 지구당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호철, 최도술 씨는 13대 이후에는 주로 부산에서 활동했다.
노 대통령이 1992년 14대 총선 낙선 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만들면서 ‘노무현 사단’은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무렵 안희정(安熙正·전 노무현 당선자 정무팀장), 서갑원(徐甲源·열린우리당 의원) 씨가 연구소에 합류했다.
이후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김두관(金斗官) 대통령정무특보와 김병준(金秉準) 대통령정책실장이 연구소에 합류했다. 이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린 염 의원은 2002년 경선 캠프에 합류했다.
특히 이광재, 안희정 씨는 어렵게 캠프의 살림을 꾸려가며 2002년 대선을 승리로 이끈 핵심으로,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은 노 대통령의 중앙 정치 보좌역을 했다.
이에 비해 부산에서 노 대통령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이호철 비서관 등은 ‘부산파’로 불린다. 386그룹인 정윤재(鄭允在) 총리실 민정2비서관과 최인호(崔仁昊) 청와대 부대변인도 부산파의 일원이다.
이광재, 안희정 씨를 축으로 한 ‘서울파’와 부산파는 원만한 관계는 아니나 부산파가 정치적 활동보다는 실무 참모 역할에 치중하고 있어 큰 충돌은 없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적 영역이 겹치는 분야의 측근들 간에는 지난 2년여 동안 상당한 갈등과 이합집산이 있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안 씨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옛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소장파 인맥이 이 의원 쪽으로 기울었고, 이들을 포함한 친(親)이광재 인사들이 현재 여권 핵심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이 의원과 안 씨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그룹은 보좌진과는 다른,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료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1995년 지방선거 후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 창당을 통해 정계에 복귀한 데 반발해 민주당을 고수했던 사람들로 열린우리당 유인태(柳寅泰), 원혜영(元惠榮) 의원 등이 대표적인 인물. 이강철(李康哲)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도 멤버다.
대부분 중진급인 이들 중에는 ‘젊은 권력 실세’인 이광재 의원에 대해 미묘한 거부감이 없지 않다고 한다. 공직 진출을 희망해 온 한 통추 출신 인사는 “이광재 의원이 도와주지는 않고 엉뚱한 사람들만 챙긴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이기명(李基明) 씨는 이광재 의원 후원회장을 맡았고, 명계남(明桂男) 씨 등은 올해 1월 국민참여연대를 결성해 4월 열린우리당 지도부 경선에 적극 개입하기도 했다.
국참련은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측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침과 구설=측근이라고 해서 잘나가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도술 씨는 불법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살았고, 노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姜錦遠) 창신섬유 회장도 사법 심판대에 올랐다. 그는 올해 ‘부처님 오신 날’ 사면 복권을 받아 형평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광재 의원도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개입 의혹에 휘말리는 상황이다.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의혹 사건으로 이 의원은 물론 후원회장인 이기명 씨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구설에 휘말렸던 박남춘(朴南春) 대통령인사제도비서관은 이 의원이 대통령국정상황실장으로 있을 때 휘하에 있었다.
행담도 개발사업에 개입한 문정인(文正仁) 전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도 이 의원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여권 내에선 이 의원을 비롯한 일부 측근 인사들이 주요 기관 인사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로 통한다는 사실 자체가 잦은 구설에 휩싸이게 하는 배경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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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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