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에 이어 노 대통령의 두 번째 미국 방문이자 부시 대통령과는 네 번째인 이번 회담은 한미동맹, 북한 핵문제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춘 실무회담이다. 그래서 의전과 격식은 최대한 줄였다.
그렇지만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이 “최근 10년 동안에 열린 정상회담 중에 가장 중요한 회담”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이번 회담에 거는 한국 정부의 기대는 매우 크다.
무엇보다 이번 회담이 북핵 문제 해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북한으로서는 이번 회담 결과를 지켜본 뒤 6자회담 복귀 문제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회담에 앞서 진행된 실무협의에서 북핵 문제는 외교적 해결 원칙과 6자회담의 유용성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양국 간 공조의 수위가 정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새로운 유인책을 모색하자는 입장이었으나, 미국 측은 “북한이 6자회담 테이블에 돌아오기 전에는 어떤 유인책도 쓸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한미동맹은 굳건하다는 점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것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게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결과물이 없을 것을 우려해서인지 “깜짝 놀랄 만한 일은 없다”,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갖지는 마라”, “공동의 인식과 가치를 확인하는 상징성이 중요하다”는 등의 얘기도 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의 이번 만남은 회담시간 50분에 실무오찬까지 합쳐 모두 2시간이다.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오찬이 끝난 뒤 스티븐 해들리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30분간 비공개로 따로 만나는 것 외에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미국 측의 요청으로 이뤄진 해들리 보좌관과의 접견에서는 북핵 문제에 관해 한층 깊은 정보나 의견을 나눌 가능성이 높다.
이번 회담에서는 2003년 1차 방미 때와 달리 공동성명 발표나 백악관 로즈가든에서의 공동 기자회견은 없다. 회담과 오찬 사이 10분가량 백악관 집무실에서 두 정상이 나란히 서서 양국 언론에 회담 결과를 간단히 소개할 예정이다.
![]() |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한미정상회담에 바란다
▼한국측 ‘혼란스러운 발언’ 진의 설명해야▼
![]() |
외교의 중요성과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 약속,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같은 일반론이 아닌 실질적인 합의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청와대의 의도가 극적인 돌파구 마련이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진로 변경이라면 회담 전망은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번 회담은 시기적으로 대단히 좋을 수도 있다. 미국의 대북 접근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는 만큼 한층 긴밀한 한미 간 협력과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개인적인 관계를 대단히 중시하는 부시 대통령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개인적 관계 여하에 따라 위기가 발생했을 때 부시 대통령이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하느냐가 결정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한미동맹의 주요 이슈들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직접 분명히 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과 문제를 악화시킨 청와대 관리들의 설명, 외교통상부와 통일부의 종종 모순된 입장 등에 관해 이번에 워싱턴을 분명히 설득해야 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한국 정부는 물론 청와대에서조차 혼란스러운 메시지가 많이 나왔다. 워싱턴에서는 한미동맹의 핵심 이슈들에 대한 노 대통령의 진짜 입장이 뭔지를 놓고 혼란과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부시 대통령도 많은 한국인이 우려하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같은 위협과 소문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의 진정한 성패는 두 정상의 마음과 관계에 달려 있다.
고든 플레이크 미국 맨스필드재단 사무국장
▼美, 공개적 北압박땐 한국 입장 난처해져▼
![]() |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율이 낮다는 현실적 제약을 잘 이해해야 한다. 노 대통령의 말을 더 경청하고, 체면을 세워 주고, 깊은 예의를 표시해야 한다. 햇볕정책에 대한 반감 표시와 같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어법은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미국의 고유한 정책을 설명할 때만큼은 솔직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갖춰져야 2001년 3월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불렀던 파국을 막을 수 있다.
그 반면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대량살상무기(WMD) 비확산이나 테러와의 전쟁 같은 핵심 정책사항에 거는 기대를 존중해야 한다. 정상회담 도중에 한국이 주장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한 레토릭(평가)이 등장하거나, 한미동맹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의지를 시험하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두 정상이 한미 간 공통분모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기회가 되기를 재삼 기대한다.
북한이 협상테이블로 나오는 데 방해가 되는 내용은 논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정상은 북한을 격려해야 하며,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을 적대적으로 압박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상황은 한국을 난처하게 만들 뿐이다. 정상회담 시간이 짧다는 것을 한미동맹 관계의 빨간불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추측하건대 실제 회담시간은 예정보다 늘어날 것이다. 예정보다 시간을 더 할애한 회담이라면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
데릭 미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