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일부 여당 의원들은 당초 보도자료를 내고 박 총재의 용퇴를 요청했던 것과는 달리 이날 회의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임기 4년이 보장된 중앙은행 총재를 ‘흔드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박 총재는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지와의 회견에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이후 달러당 원화 환율이 일제히 하락하자 한은은 환율방어를 위해 1조 원을 투입했다.
열린우리당 이계안(李啓安) 의원은 “외환운용과 관련된 실언으로 인해 막대한 환율방어 비용이 소모됐다”며 “성경구절에 있는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워라’는 말을 잘 새길 것을 바란다”고 꼬집었다.
김종률(金鍾律) 의원도 “박 총재가 최근 부동산 담보인정비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발언하며 부동산정책에 개입하겠다고 언급한 것 역시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너무 아마추어식으로 시장에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종구(李鍾九) 의원도 “박 총재가 외환시장 관련 실언뿐 아니라 정치성 발언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말을 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 총재는 국내외 언론에 책임을 떠넘겼다.
박 총재는 “FT의 악의적인 보도였으며 국내 언론들도 ‘한은 총재 발언으로 1조 원을 날렸다’는 제목을 뽑아 과장 보도하는 등 제대로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 총재는 “FT에 외환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지 환율하락을 방치하겠다고는 안했다”며 “발언 내용을 원고로 만들어도 해설기사로 왜곡 보도하기 때문에 가급적 외신기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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