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양보 불가피’ …정부 알고서도 협상

  • 입력 2005년 6월 14일 03시 20분


정부는 쌀 협상을 앞두고 관세화를 통한 시장 개방이 더 유리하다고 보면서도 농민 반발 등을 의식해 협상을 강행하느라 상대국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이 자국 쌀의 시장점유율을 보장하라고 요구하자 정부는 “요구사항을 이행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구두 약속하는 등 여러 나라에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13일 본보가 확인한 8건의 쌀 협상 관련 정부 내부문건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농림부는 2003년 12월 쌀 시장 개방 유예의 장단점을 분석한 자료에서 “사후 비판의 소지가 없는 안전한 협상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쌀 재고가 많은 상태에서 (외국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개방보다 불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는 쌀 시장을 여는 것이 개별 국가들과 별도 협상을 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시장을 개방하면 2014년까지 낮은 관세로 수입되는 쌀이 전체 소비량의 7.1∼7.5%에 그치지만 개방을 미루면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이 8%에 이른다는 것. 실제로 쌀 협상 결과 의무수입물량은 소비량의 7.96%로 정해졌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개방이 불가피한데 시장을 닫아두면 나중에 낮은 관세율로 한꺼번에 많은 쌀을 수입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면서도 “쌀 시장 개방 여부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끝난 뒤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후 정부는 최대 협상국 미국에 대해 2014년까지 수입쌀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도록 선의의 노력(Good faith effort)을 다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주미 대사가 미무역대표부(USTR) 고위관계자를 만나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 따라서 시장점유율이 미국 측 기대에 못 미치면 양국 간 통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또 아르헨티나산 닭고기에 대한 수입 검역을 올해 6월 말까지 끝내겠다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장 명의의 편지를 아르헨티나 측에 보내기도 했다.

이후 아르헨티나가 검역 서류를 제출하지 못해 수입 시기는 미뤄졌지만 쌀 협상의 대가로 아르헨티나산 닭고기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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