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물자로 판정돼도 정부의 허가를 받으면 북한에 반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략물자 대부분이 미국 국내법의 저촉을 받기 때문에 한미 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 북한 핵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지고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 개성공단 직통전화 개통이 연기된 것은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 왜 심사 늦어졌을까
수출 물품이 ‘전략물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한국무역협회 산하 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에서 판정한다.
KT가 개성공단 통신설비 가설에 필요한 15종의 물품에 대해 심사를 신청한 것은 4월 말. 수출입공고 제8조 1항에 따르면 센터는 신청서를 접수한 날부터 15일 이내에 전략물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판정을 내려야 한다.
따라서 KT는 개통 시점을 맞추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3월 말 북측과 전화요금 등 기본적인 사항을 합의했기 때문. KT 관계자는 “공사는 2주일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11종에 대해선 전략물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정이 곧 내려졌지만 필수장비인 교환기와 개인용 컴퓨터(PC)는 한 달 반이 넘도록 판정이 미뤄지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현재 상근직원 10명 가운데 심사에 관여하는 직원은 단 2명”이라며 “인력 부족이 원인”이라고 해명했다.
○ 미국이 동의해야
그러나 통신업계에선 “미국과의 관계가 고려됐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1987년 9월 체결된 ‘한미 전략물자 및 기술자료 보호에 관한 양해각서’에 따라 양국은 전략물자 대상 품목을 정할 때 서로 합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직통전화 개설을 위한 통신장비 역시 마찬가지.
정부의 한 당국자는 “미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 이전에 개성공단으로 전략물자가 반출되는 데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전략물자 수출통제규정(EAR)을 위반하는 물자를 반출하는 기업은 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았더라도 미국 법에 따라 제재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양국 간 무역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한국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 기업만 괴롭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전략물자’ 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직통전화가 없어 남쪽 본사와 전화하는 데 분당 1500원을 내고 있다. 국제전화 회선을 통해 일본을 거친 후 통화하기 때문이다.
실제 공장을 가동하려면 1500여 품목이 필요한데 대부분 ‘전략물자’에 해당한다. 컴퓨터, 선반, 공작기계, 밀링머신 등 산업용 물품이라도 군수용으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되면 반출이 어렵다.
전략물자 수출통제 대상품목 | |
구분 | 품목 |
바세나르체제 관련 | 군수용 전환 가능한 일반 산업용 물자, 방산 물자 |
원자력 비확산체제 관련 | 원자력 전용물자, 원자력 관련 일반 산업용 물자 |
미사일 비확산체제 관련 | 로켓과 무인항공기, 관련 장비와 생산시설 및 기술 |
생화학무기 비확산체제 관련 | 생화학 물질, 생화학 산업용 제조시설과 장비 및 기술 |
화학무기금지협약 관련 | 1∼3종 화학물질 |
자료:전략물자무역정보센터 |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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