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양방송은 14일 “미국이 이 땅에 핵전쟁의 검은 구름을 몰아오더라도 우리민족끼리 이념을 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의 위협을 대남(對南) 연대를 통해 막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
실제 북한은 위기 때마다 대남 협력을 강화해 왔다. 2002년 12월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을 주장해 핵 위기가 고조되자 2003년 1월 남북 장관급회담에 나왔다.
한 달 뒤인 2003년 2월엔 육로를 통한 첫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이뤄졌다. 남성욱(南成旭)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핵 문제로 북한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남북관계는 오히려 호전되는 형태를 보여왔다”며 “북한은 남측과 협력해 미국을 막는다는 통남봉미(通南封美) 정책을 즐겨 사용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정부는 이번 행사를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민간 행사에 굳이 정부 대표단을 참석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축전 첫날 이모저모▼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 기념 ‘통일대축전’이 14일 오후 남북 및 해외 민간대표 700여 명을 포함해 10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개막됐다. 이번 통일대축전에는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대표단 40명이 처음 참가했다.
백낙청(白樂晴) 남측준비위원회 상임대표는 개막 연설에서 “분단 60년이 되는 올해를 평화와 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여는 해로 만들자”고 말했다. 북측 준비위원회 명예위원장인 양형섭(楊亨燮)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은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새천년 역사의 활로를 찾아내자”고 강조했다.
○…정부대표단은 이날 대한항공(KE) 9815편으로 서해직항로를 거쳐 오후 6시 15분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엔 권호웅(權浩雄)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단장, 이종혁(李種革)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나와 영접했다. 북측은 남측 대표단에 당초 예정됐던 주암초대소 대신 국빈급 사절이 이용하는 백화원초대소를 숙소로 사용케 했다.
백화원초대소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묵었던 곳.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부 장관,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도 방북 시 이곳을 숙소로 이용했다.
○…김기남(金基南) 북측 당국대표단장은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측 단장인 정 장관에게 “정동영 선생을 열렬히 환영한다”고 밝히고 “김대중 선생님은 건강하시냐”고 안부를 물었다.
취임 이후 평양을 처음 방문한 정 장관은 “6·15공동선언 5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번 행사에 대해) 정부대표단도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남측 민간대표단은 오전 9시 5분 KE 815편으로 인천공항을 출발해 서해직항로를 거쳐 오전 10시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안경호 북측준비위원장과 김정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부위원장 등의 영접을 받았다.
당초 남측 대표단에 포함된 인사 중 2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4명은 ‘개인적인 이유’로 방북을 포기해 최종 방북인원은 295명이 됐다. 한편 이번 민간대표단의 행사 참가비는 1인당 25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개막에 앞서 남북과 해외의 민간대표단 500여 명은 비가 오는 가운데도 평양 시내 천리마동상에서 김일성경기장에 이르는 2km 구간을 개선문 도로 양쪽에 도열한 6만여 평양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행진했다.
행진하는 동안 평양 시내에는 굵은 비가 내리고 세찬 바람이 불었지만 참가자들은 북측준비위가 제공한 우비를 입고 취주악단과 한반도기를 앞세워 행진을 무사히 마쳤다.
평양=공동취재단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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