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현장 르포]피범벅 매트리스…내무반 ‘15평 지옥’

  • 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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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의문투성이”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21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군 당국의 수사 발표를 듣다 의혹을 주장하며 항의하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유족들 “의문투성이”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족들이 21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군 당국의 수사 발표를 듣다 의혹을 주장하며 항의하고 있다. 성남=사진공동취재단
《경기 연천군 최전방 감시소초(GP)의 총기난사 사건 현장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15평 남짓한 내무반에는 핏자국과 탄흔, 살점 파편과 이불조각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기자는 21일 국방부의 협조로 군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참사의 현장을 둘러봤다.》

▽참상 보여 주는 현장=내무반 침상에는 여전히 매트리스가 깔린 상태였다. 이불과 담요는 수류탄 폭발 소리에 놀란 사병들이 급하게 제치고 뛰어 나가는 바람에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박의원 상병이 숨진 자리는 폭발로 인해 축구공 정도 크기로 매트리스가 깊숙이 파인 채 산산이 찢어져 있었다. 그 주변은 말라붙은 피가 범벅이 돼 있었으며 바로 위 천장에는 거무튀튀한 손톱 크기의 파편들이 붙어 있었다.

이불솜과 살점이 한데 섞여 천장에 붙은 것이라고 동행한 관계자가 설명했다. 범인 김동민(22) 일병이 던진 수류탄이 박 상병의 복부에서 터지는 바람에 유독 박 상병의 피해는 컸지만 폭발 충격이 흡수돼 다른 장병들의 피해를 오히려 줄인 것 같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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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철 김인창 이건욱 상병이 사망한 매트리스는 피범벅이 돼 검은 색으로 변해 있었고 이태련 상병과 차유철 상병이 쓰러진 내무반 바닥은 흥건히 고인 피가 아직도 덜 마른 상태였다.

핏자국 주위에는 군 조사단이 뿌린 흰색 스프레이와 사망자의 이름이 적힌 A4 용지가 있었다. 내무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차 상병의 사망 장소에는 줄이 끊어진 군번 인식표가 핏물 속에 놓여 있었다.

피해는 문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 방향에 집중돼 있었다. 김 일병이 소총으로 사격했을 때 내무반 안에 들어오지는 않고 입구 밖에서 총구만 안으로 들이민 채 수류탄을 터뜨린 방향으로 사격한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이 주변의 형광등은 박살이 나 있었고 관물함에는 군데군데 1, 2cm 크기의 총알 자국이 있었다.

김 일병이 평소 감정을 갖고 있었던 이모 상병이 잠자는 방향이었다. 그러나 사고 전날 김 일병을 질책했다는 신태준 상병의 잠자리는 반대 방향이었다.

김종명(26) 중위의 시신이 발견된 체력단련실은 핏자국이 바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김 중위가 총알을 맞은 뒤 즉사한 게 아니라 피를 흘리며 체력단련실 안을 돌아다니다가 숨진 것으로 보였다. 또 김 일병이 김 중위를 향해 쐈지만 빗나간 총탄 4발의 탄흔이 벽에 남아 있었다.

조정웅(22) 상병이 숨진 곳은 취사장 입구 바로 뒤였다. 군은 김 일병이 조 상병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취사장 문에서 다리가 나오는 것만 보고 사격한 것 같다고 했다. 조 상병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신음하던 중 다시 총격을 받고 숨졌다.

▽열악했던 생활환경=30여 명이 함께 자는 내무반에서 한 사람이 몸을 눕힐 수 있는 폭은 자기 관물함 폭과 같은 90cm 정도였다.

매트리스는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따로 빨래를 말릴 곳이 없었던 듯 형광등 커버마다 내의와 양말이 걸려 있었다. 하늘색 페인트가 벗겨진 관물함에는 가족이나 친구와 찍은 병사들의 ‘사회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내무반에 냉방·환기장치라고는 선풍기 3대와 환풍기 1대가 고작이었다. 내무반 취사장 체력단련실의 문과 창문은 유리가 아닌 비닐이나 방충망으로 돼 있어 소초 건물은 전체가 가건물처럼 보였다. 한 의원이 이곳을 둘러본 뒤 “교도소만도 못하다”고 말한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 GP는 1980년대 초반에 세워진 것. 페인트로 위장색을 칠했으나 거의 다 퇴색되고 일부는 벗겨진 상태였다. 철조망과 건물 사이에 공간이 거의 없어 GP 내 연병장은 일반 단독주택의 마당만 한 크기였다.

TV는 체력단련실에 1대만 있었고 GP 전체에서 사병들이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은 화장실뿐이었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2km 후방)보다 북한군 GP(1.5km 전방)가 더 가까이 있어 심리적인 긴장감도 상당할 것으로 보였다.

안내를 맡은 한 장교는 “한창 나이 때 애들이 3개월 동안 한곳에서 꼼짝 못하고 24시간 내내 똑같은 얼굴을 보는 곳”이라며 “GP에서 근무하는 사병들은 밤낮을 거꾸로 사는 데다 ‘전쟁이 나면 우린 꼼짝없이 죽는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도 심하다”고 말했다.

연천=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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