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이 최전방 감시소초(GP)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만인 22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자 군내에선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이날 청와대가 “시간을 두고 생각하겠다”고 방침을 밝히자 일단 안도를 하면서도 여론의 흐름에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사건발생에서 사퇴 표명까지=사건이 발생한 19일 오전 윤 장관은 직접 대(對)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와 사후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 장관은 이어 김장수(金章洙) 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와 함께 사망자 시신이 분산 안치된 4개 군 병원을 돌며 유족들을 위로하는 데 주력했다. 이때만 해도 사건의 파장이 윤 장관의 거취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일각에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실세장관’이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일찌감치 윤 장관의 사퇴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21일 유족들의 거센 반발과 정치권에서 윤 장관의 해임결의안 제출이 가시화되면서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또 사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군 기강태세의 총체적 부실은 ‘윤 장관 문책론’에 기름을 부었다. 이런 상황 반전 때문에 윤 장관은 고심 끝에 용퇴를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쇄신 차원에서 최고수뇌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라고 군 내 분위기를 전했다.
▽탈 많고 말 많았던 11개월=지난해 7월 비육군(해군) 출신으로 취임한 윤 장관의 ‘화려한’ 군 개혁은 취임 초기 군 안팎에서 호응을 얻기도 했다.
‘육방부’로 불릴 만큼 오랜 세월 육군 출신이 독점해 온 국방부와 합참의 주요 보직에 타군 출신을 과감히 기용했다. 또 현역 일색이던 국방부의 국장급 보직을 대부분 민간인으로 교체하는 등 군 문민화에 힘을 쏟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로 장관 취임 이전 대통령국방보좌관을 지낸 윤 장관은 참여정부의 군 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대형 악재가 꼬리를 물면서 윤 장관의 입지는 좁아져만 갔다. 지난해 육군 장성진급 비리의혹 사건과 최전방 철책선 절단 사건으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올해 초에는 훈련병 인분가혹행위 사건까지 터졌다.
그로부터 6개월도 되지 않아 13일엔 북한군 병사가 최전방 3중 철책을 넘어와 나흘간이나 전방지역을 배회하다 발견된 데 이어 총기난사 사건까지 터지자 윤 장관으로서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선택=청와대는 한동안 여론을 살피면서 고심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이 물러날 경우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군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노 대통령 역시 군 문민화와 군 사법제도 개혁, 방위사업청 개청 등 각종 군 개혁을 완수하려면 윤 장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윤 장관을 이어줄 마땅한 ‘구원투수’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논거를 바탕으로 그의 유임을 점치는 성급한 견해도 군 내에 적지 않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지난해 말부터 “국민의 여론도 중요하다”며 일부 장관을 바꿔 온 데다 다음 달 초 부분개각이 예정돼 있어 윤 장관의 사의를 받아들여 청와대와 내각을 개편하는 부분개각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어 주목된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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