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비핵화’ 발언 속셈▼
“한반도 비핵화는 주석(김일성)의 유훈”이라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2월 10일의 핵 보유 및 핵무기고 확대 발표와 배치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 내에서는) 그 발언을 희망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아니면 사실과 다른 얘기로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해답은 물론이고 한마디 질문도 없는 상황이다. 그의 이번 발언은 다면적 목적이 있다고 본다.
우선 최근 한국이 북한에 비료 20만 t을 제공한 게 ‘단지 허튼 일’이 아니었음을 국내외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 둘째, 미국이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가져가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셋째, 중국이 최근 북한에 ‘핵실험 하지 말라’ ‘6자회담 복귀하라’고 압력을 가하는데 이를 너무 오래, 그리고 강하게 거부하면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북한의 게임 시나리오▼
북한은 세 가지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첫째, 가능한 한 시간을 끌고 필요하면 대화도 하면서 핵보유국의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 본보기로 파키스탄을 생각하고 있다.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충분한 보상을 못 받고 있다’며 불평하고 있다는 보고가 최근 김 위원장에게 많이 올라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둘째, 시간을 벌어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핵 억지력을 확보하려 한다. 셋째, 북한은 핵 문제 상황에 상관없이 한국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확보하려 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식량 에너지를 안 주면 우리는 망한다. 우리가 망하는 것이 좋으냐’는 식의 벼랑 끝 전술을 쓸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최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미국이 부채질한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펴는 것은 한국 내 여론을 양극화시키거나 친북화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한미관계를 약화시켜 한국의 정치적 외교적 역량을 최소화하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적 역할만 살려둬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비료 식량 돈 같은 경제적 혜택만 계속 노릴 것이다.
▼韓美관계 걸림돌 뭔가▼
노무현(盧武鉉) 정부와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 양쪽 다 교조주의적인 면이 많다. 그래서 (주미대사 재직 때) 미국에서의 외교활동도, 본국과의 관계도 어려웠다.
한쪽이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기보다 허심탄회하게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실질적 논의가 필요한데…. 미국 사람들은 “한국 측 카운터파트와 대화하면 ‘태도(attitude)’는 알겠는데 ‘정책(policy)’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외교정책을 전략적으로 다루기보다 정서 감정 혼(魂)을 많이 강조하는 것 같다.
:한승주 교수 약력:
△서울 출생, 65세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외무장관(1993년 2월∼1994년 12월)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의장
△고려대 총장서리
△주미대사(2003년 4월∼2005년 2월)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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