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생활 힘겹지만 후회는 없어요”

  • 입력 2005년 6월 27일 03시 11분



《병역을 마치지 않은 남자는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한 국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를 앞두고 올해 초 이중국적자들의 한국 국적 포기가 잇따라 논란을 빚었다. 전방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인터넷에는 “이래서 군대 가기 싫다”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2001년 이후 2005년 5월 말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면제 받은 사람이 2만2482명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이 기간에 15명이 이중국적 정리나 이민 등의 사유로 상실했던 한국 국적을 회복해 병역의무를 마쳤거나 이행 중이고 일부는 입대를 기다리고 있다. 본보는 ‘병역은 일단 면하고 보자’는 풍조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이들 15명 중 연락처가 확보된 7명(이 중 2명은 익명 요구)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자진해 병역의무를 이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거창한 애국심을 들먹이기보다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위해 군대에 갔고, 가보니 인생에 도움이 되더라.”》

▽이동혁=캐나다에 이민 갔다가 아버지 사업 때문에 다시 한국에 왔다. 그 사이 국적이 상실돼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먹고살면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항상 들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군대에 가는 것을 보고 나도 입대를 결정했지만 주변의 유학생 친구들은 군 입대를 말렸다. 어머니도 별 말씀 없다가 입대 직전에는 “섭섭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내 인생 내가 결정한 것이니 후회는 없다. 해야 할 일을 피하면서 살기는 싫었다.

▽교조진철=어릴 때 일본으로 이민 가 사실상 일본인으로 살았다. 우리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할 정도였다. 지금 내 성(姓)을 일본식으로 교조(橋爪·하시즈메)라고 쓰는 것도 아버지가 연금을 받기 위해 아직 일본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년이 된 뒤 우연히 한국 직장을 소개받아 한국에 와 살게 됐는데, 한국말도 익히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면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는 권유를 많이 들었다.

▽장수환=나는 부모가 미국에 유학 중 출생해 이중국적 상태였지만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보통 한국 남자들처럼 군대는 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사나이가 군대는 갔다 와야지” 하는 식의 마초이즘(남성 우월의식)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왜 그 또래에는 그런 생각들이 있지 않겠는가. 부모님은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너에게는 군대 안 갈 수 있는 길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단점도 있다”고 객관적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권혁천=군대 간다고 하니까 “왜 사서 고생하느냐” “미친 짓 아니냐”며 뜯어말리는 친구가 더 많았다. 어머니도 내색은 안 했지만 처음에는 다소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군대생활의 역동성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부모님이 교육 여건을 고려해 캐나다로 이민 갔는데, 그곳은 젊은 꿈을 펼치기에는 역동성이 부족한 곳이었다.

▽고태호=미국 문화가 너무나 개인주의적이어서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 데다 부모님이 내 유학 뒷바라지, 특히 세금 문제로 고생한다는 사실도 알게 돼 한국에 돌아오게 됐다. 공군에 지원해 9월에 입대할 예정인데 아직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한정헌=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가 멜버른에 있는 국립공과대학을 다녔지만 현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다듬을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2003년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해 28세에 현역 입대했다.

▼끈기-적응력 늘어 내 삶에 도움▼

▽장수환=군생활 2년 동안 훈련병에서 병장까지 고속 승진하는 과정에서 각 계급에 부여되는 역할 모델과 위계질서를 체험하게 되는데 그게 나중에 조직생활,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더라.

▽교조진철=나는 군대에서 한글을 배우고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운전병으로 일했는데, 처음에는 한글 교통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트럭을 몰기도 했다. 물론 많이 혼나기도 했다. 다행히 내 사정을 아는 선임병들이 많이 배려해 줬다.

▽권혁천=사회에 있을 때보다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많아 대체적으로 만족한다. 동료 선후배들을 사귀면서 얻은 인맥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기 난사 사건 같은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조금만 버티면 인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데 말이다.

▽교조진철=군생활을 하면서 일본 사회와는 다른 한국의 특성을 배웠다. ‘빨리빨리’와 ‘남이 모르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특히 문제가 생겼을 때 걸리면 재수 없는 것이고, 안 걸리면 대충 덮어버리는 대충주의 문화는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다.

▽한정헌=28세의 늦은 나이에 입대해 걱정도 했지만 곧 끈기도 생기고 힘든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행군을 좋아한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 포기가 논란인데 솔직히 병역을 기피하겠다고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군생활하는 시간이 아까워 다른 일에 투자한다지만 그래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임지연=군대도 하나의 인생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는 미국 국적이었는데 가족 모두가 한국에 사는 이상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군대도 가려 한다. 나는 국적과 관계없이 과체중(120kg)이어서 군대를 안 갈 수 있지만 군대 가려고 몸무게를 줄였다. 6개월 전 징병신체검사에서 체중과다 판정을 받았으나 현재 70kg 대까지 감량했기 때문에 다음 신검에서는 문제없이 현역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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