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캐나다에 이민 갔다가 아버지 사업 때문에 다시 한국에 왔다. 그 사이 국적이 상실돼 유학생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먹고살면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항상 들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군대에 가는 것을 보고 나도 입대를 결정했지만 주변의 유학생 친구들은 군 입대를 말렸다. 어머니도 별 말씀 없다가 입대 직전에는 “섭섭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내 인생 내가 결정한 것이니 후회는 없다. 해야 할 일을 피하면서 살기는 싫었다.
▽교조진철=어릴 때 일본으로 이민 가 사실상 일본인으로 살았다. 우리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할 정도였다. 지금 내 성(姓)을 일본식으로 교조(橋爪·하시즈메)라고 쓰는 것도 아버지가 연금을 받기 위해 아직 일본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년이 된 뒤 우연히 한국 직장을 소개받아 한국에 와 살게 됐는데, 한국말도 익히고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면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는 권유를 많이 들었다.
▽장수환=나는 부모가 미국에 유학 중 출생해 이중국적 상태였지만 한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보통 한국 남자들처럼 군대는 가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에는 “사나이가 군대는 갔다 와야지” 하는 식의 마초이즘(남성 우월의식)이 많이 작용한 것 같다. 왜 그 또래에는 그런 생각들이 있지 않겠는가. 부모님은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너에게는 군대 안 갈 수 있는 길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는 단점도 있다”고 객관적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권혁천=군대 간다고 하니까 “왜 사서 고생하느냐” “미친 짓 아니냐”며 뜯어말리는 친구가 더 많았다. 어머니도 내색은 안 했지만 처음에는 다소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군대생활의 역동성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부모님이 교육 여건을 고려해 캐나다로 이민 갔는데, 그곳은 젊은 꿈을 펼치기에는 역동성이 부족한 곳이었다.
▽한정헌=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가 멜버른에 있는 국립공과대학을 다녔지만 현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가다듬을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2003년 한국 국적을 다시 회복해 28세에 현역 입대했다.
▼끈기-적응력 늘어 내 삶에 도움▼
▽장수환=군생활 2년 동안 훈련병에서 병장까지 고속 승진하는 과정에서 각 계급에 부여되는 역할 모델과 위계질서를 체험하게 되는데 그게 나중에 조직생활,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더라.
▽교조진철=나는 군대에서 한글을 배우고 다시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운전병으로 일했는데, 처음에는 한글 교통표지판을 제대로 읽지 못해 엉뚱한 방향으로 트럭을 몰기도 했다. 물론 많이 혼나기도 했다. 다행히 내 사정을 아는 선임병들이 많이 배려해 줬다.
▽권혁천=사회에 있을 때보다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배우는 게 많아 대체적으로 만족한다. 동료 선후배들을 사귀면서 얻은 인맥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기 난사 사건 같은 것을 보면 정말 안타깝다. 조금만 버티면 인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데 말이다.
▽교조진철=군생활을 하면서 일본 사회와는 다른 한국의 특성을 배웠다. ‘빨리빨리’와 ‘남이 모르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이 그것이다. 특히 문제가 생겼을 때 걸리면 재수 없는 것이고, 안 걸리면 대충 덮어버리는 대충주의 문화는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다.
▽한정헌=28세의 늦은 나이에 입대해 걱정도 했지만 곧 끈기도 생기고 힘든 상황에 적응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행군을 좋아한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 포기가 논란인데 솔직히 병역을 기피하겠다고 국적을 포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군생활하는 시간이 아까워 다른 일에 투자한다지만 그래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임지연=군대도 하나의 인생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원래는 미국 국적이었는데 가족 모두가 한국에 사는 이상 한국 국적을 회복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군대도 가려 한다. 나는 국적과 관계없이 과체중(120kg)이어서 군대를 안 갈 수 있지만 군대 가려고 몸무게를 줄였다. 6개월 전 징병신체검사에서 체중과다 판정을 받았으나 현재 70kg 대까지 감량했기 때문에 다음 신검에서는 문제없이 현역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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