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맨 마지막으로 북한을 빠져나온 영옥 씨는 북한 당국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중국으로 넘어갔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두 달 보름여 동안이나 숨 막히는 은신생활을 해야 했다.
2일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진입에 성공한 영옥 씨 모자는 이달 중 입국해 먼저 한국 땅을 밟은 가족들과 꿈에 그리던 한국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불안과 긴장의 연속=가족들이 모두 탈북한 3월 말부터 영옥 씨의 집(함경북도 온성군 주원구 55반)에는 북한 당국에서 보낸 감시원 4명이 번갈아 가며 상주하다시피 했다.
감시가 소홀해진 4월 중순 늦은 밤, 평소 술주정이 심한 데다 아내가 국군포로의 딸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남편을 피해 집을 빠져나온 영옥 씨 모자는 갖은 고생을 하며 같은 달 19일 북한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중국 지린(吉林) 성 투먼(圖們) 시의 한 아파트에서 은신생활을 하던 이 모자는 지난달 17일 한국대사관으로 인계된다는 소식에 한껏 들떴지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를 보호하고 있던 탈북 브로커가 당초 자신이 데리고 있던 다른 탈북자 조모(37·여) 씨를 장 씨의 큰아들 영복(35) 씨의 부인으로 위장해 입국시키려 했던 것.
그러나 정부의 신원조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들통 나자 영옥 씨 모자를 억류한 채 조 씨의 한국행을 요구했다.
▽숨가빴던 협상 과정=본보를 통해 영옥 씨 모자의 억류 소식이 알려진 뒤 정부와 ‘납북자 가족모임’의 최성룡(崔成龍) 대표 등이 나서 탈북 브로커 조직과 접촉했지만 협상은 순탄치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탈북자는 북한 주민으로 국군포로와는 신분이 다르다”며 “북한 주민을 정부가 나서서 데려온다면 대북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있어 브로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탈북자가 입국한 뒤 정부로부터 받는 정착금의 30∼50%를 수고비로 받는 탈북 브로커는 한 명이라도 더 빨리 입국시키기 위해 영옥 씨 모자를 협상카드로 활용했다.
오랜 진통 끝에 장 씨의 남한 내 가족과 최 대표는 “영옥 씨 모자를 넘겨주면 조 씨가 제3국을 통해 입국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하고 영옥 씨 모자를 억류 16일 만에 무사히 빼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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