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은 ‘3김 정치의 유산’인 지역구도의 해소다. 10일 취임 100일을 맞은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이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나섰다.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야당에 총리지명권을 주고 내각제 수준으로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로 실현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 원리와도 어긋나는 제안이다. 여권 핵심부의 속셈은 무엇일까.
▽명분은 지역구도 극복, 속셈은?=노 대통령은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 제출 이후 “야당이 발목을 잡아 국정을 운영할 수 없다”며 연정 구상을 밝혔다.
여소야대 구조 하에서는 대통령이 제대로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야당과 연정을 통해 정국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정은 ‘야합’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과 같은 순수 대통령제가 아닌 유럽 국가에서는 연정이 여소야대 하에서 국정 운영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그러더니 연정의 주요 대상인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노 대통령의 제의에 유보적 혹은 부정적 태도로 나오자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에는 다목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노 대통령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강조해 온 지역구도 해소라는 명분을 지렛대로 삼았다.
문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인 보스 체제를 극복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은 만큼 남은 과제는 이분법적 정치 문화, 즉 지역구도 해소다.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자”고 거듭 강조했다. 한나라당에 대한 공세를 통한 정국주도권 회복을 기대하는 측면도 강하다.
문 의장은 “연정의 1차 대상으로 한나라당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했다. 또 총리지명권도 한나라당에 줄 수 있다고 암시했다. 그러나 대통령제 아래서 제1 야당을 연정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초법적인 발상이며 한나라당이 ‘동거’ 제의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연정의 주 타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선거제도 개편 어떻게 하자는 건가=현행 소선거구제가 지역 구도를 고착화시키고 있는 만큼 이를 개편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노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초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를 잇따라 제의한 바 있다. 이에 한나라당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여권은 중대선거구제가 바람직하지만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 놓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한마디로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켜 사표를 방지하자는 것으로 민주노동당이 도입을 주창해 왔다. 지난해 총선 때 13%의 정당득표율을 획득한 민주노동당의 경우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면 의석수가 10명에서 39명으로 4배가량 늘어나게 된다.
선거제도 개편은 정당 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민감한 사안이다. 이 때문에 여권이 연정의 명분은 확보하되 이와 연계될 수밖에 없는 개헌론 등의 숨고르기를 위해 선거제도 개편을 화두로 들고 나왔다는 지적도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