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나라당의 거부의사가 명백한 상황에서 여권이 ‘연정 압박’을 계속하는 이면에는 연정의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현재의 정국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연정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꺼낸 1차적 배경은 4·30 재·보선 참패 후 조성된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다.
뒤집어보면 여권이 느끼는 선거 참패의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더구나 향후 예상되는 정치상황도 여권에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11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상임운영위원회의를 주재하는 박근혜 대표(오른쪽).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여권의 연정 및 선거제도 개편 제의 등에 대해 “지금은 민생과 경제에 전념해야 할 때”라고 일축했다. 전영한 기자 |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10∼20%대에 불과한 현재의 상황이 10월 재·보선과 내년 5월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유가 급등,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 등에서 보듯 경제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패배한다면 여권의 국정 장악력은 최악으로 떨어질 수 있다.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한 신당 추진 움직임도 여권으로서는 부담되는 변수다. 신당이 구체화할 경우 지방선거 등에서 여권의 표를 잠식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담스럽기만 한 향후 ‘정치 일정’이 연정론을 제기하게 한 내심의 이유라는 분석이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제기된다.
연정론 공론화로 ‘여소야대’가 정국혼란의 주범이라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야당에 연정 제의를 하면 이를 거부할 것이 뻔하므로 그 책임이 야당에 있다는 압박 공세를 취할 수 있다는 정국 이니셔티브 시나리오가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한 고위 당직자는 “노 대통령의 승부수로 여권이 국면의 주도권을 쥐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당에서도 의견이 분분=노 대통령과 문 의장 등 여당 지도부가 ‘한나라당 총리 지명권’을 언급하며 연정론을 구체화하는 데 대해 여당 내에서도 일부 반론이 나온다.
친노(親盧) 직계 의원들은 대체로 “지역구도 해소라는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일부 차기 대권주자 후보군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정치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연정의 ‘전제조건’인 선거구제 개편 논의가 궁극적으로 내각제 개헌론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주요 정치 일정과 예상되는 정국 변화요인 | |
일정 | 예상 정국 변화 요인 |
2005년 10월 30일 재·보선 | ―여권, 연정론 공론화를 포함해 ‘여소야대가 정국의 최대 문제’라는 이슈 지속 제기 예상. |
2006년 5월 31일 지방동시선거 전후 | ―여권, 지방선거 연합공천 제안 가능성. ―여권, 지방선거에서 연정과 분권론 강조하며 개헌 명분 축적 예상. ―지방선거 앞두고 고건 전 국무총리 중심의 신당 또는 중부권 신당 등 새 야당 태동 가능성. |
2006년 하반기 | ―여권, 연정과 분권론의 연장선상에서 개헌 논의 본격 제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대권레이스 본격화. ―고 전 총리 등 제3의 대권주자 부상. 정치권 합종연횡 가능성. |
2006년 말∼2007년 상반기 | ―개헌 향방 판가름(내각제 이원집정제 대통령중심제). ―개헌이 대통령제로 확정될 경우 대권 후보 윤곽 판명. |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연정론보다 경제” 한나라 마이웨이▼
한나라당은 11일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 고유가 대책 등 각종 경제정책을 쏟아냈다.
정부 여당이 연일 제기하는 연정(聯政) 논쟁에 휩쓸리지 않고 경제문제에 당력을 집중해 여권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이날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경제 상황이 말도 못하게 어려운데 고통 받는 국민 앞에서 정부가 한다는 이야기가 고작 이거(연정)냐”며 “지금은 민생과 경제에 전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경제를 살리려면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부가가치세 인하 등 과감한 감세정책, 투자를 살리기 위한 수도권 규제 완화, 출자총액제도 폐지 등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400조 원의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고, 자금이 우리보다 국제금리가 높은 외국으로 빠져나갈 형편인 만큼 금리를 올리는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울 정도로 가파르게 오르는 유가가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석유류에 부과되는 세금의 10% 인하 △석유판매 최고가격제 시행 △석유수입부과금을 현행 L당 14원에서 8원으로 낮추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맹 의장은 “석유 가격의 62%가 세금이기 때문에 일부 인하해도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며 “10% 인하 시 1조2000억 원의 감면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무성(金武星) 사무총장은 “최고경영자(CEO)의 70%가 현 경제 상황을 장기불황 진입 국면으로 진단하고 있다”며 “정치권이 민생문제를 외면하고 당리당략에 의한 이전투구만 벌이면 폭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정부에 경고한다”고 지적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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