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한국 현대사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사진) 국민대 초빙교수는 1946∼52년 말까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한반도 관련 결정문(공산당 수뇌부가 내린 지령) 67건을 입수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정치국이 미소공동위 소련 측 대표에게 하달한 결정문 2건을 발견했다고 13일 밝혔다.
1946년 7월과 47년 5월에 하달된 이 결정문은 소련 측 대표에게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을 제시하도록 하고 미국이 이에 반대할 경우 회담 결렬을 선언하라고 지시했다. 미소공동위는 1945년 12월 한국의 신탁통치를 결정한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회의 결정에 따라 한국에 임시정부 수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설치됐다.
란코프 교수는 “1946년 7월의 결정문은 ‘남북 임시민주정부의 참여정당 비율을 북한 40%, 남한 60%로 하되 남한 측 지분 중 30%는 우익, 30%는 좌익으로 구성돼야 한다’고 돼 있으며, 미국이 이에 반대할 경우 타협하지 말고 회담을 결렬시킬 것을 지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결정문은 또 통일정부의 총리를 포함한 16개 장관직 중에 10개 장관을 좌익계열로, 나머지 6개 장관직을 우익계열에 할애하도록 협상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
1947년 5월의 결정문에선 이 같은 비타협적 자세가 더욱 강화됐다. 남북 정당지분을 50 대 50으로 나누고 남한 지분의 절반인 25%를 좌익계로 해서 소련지지 세력을 75%로 늘릴 것을 요구하도록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란코프 교수는 또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남북지도자회의)과 관련해 “남북지도자회의도 소련 공산당 정치국의 지령을 받은 김일성이 제안해 이뤄졌다”면서 “정치국 결정문에는 △5월로 예정된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비난하고 △남한과 북한에서 외국군대의 즉각 철수를 주장한 소련의 제안을 지지하며 △이후 남북 총선거 실시를 촉구하도록 하라는 지령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1948년 당시 남한에서는 소련의 이 같은 계획을 알아차리고 “소련의 꼭두각시에 놀아난다”면서 보수세력들이 남북지도자회의에 반대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일부 진보학자들은 당시 남북회담에 반대한 것이 분단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주장을 펴 학계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란코프 교수의 소련 정치국 지령문 발굴 공개로 소련이 겉으로는 한반도 통일정부 수립을 지지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북한에 친소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오랫동안 치밀한 작업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히 드러났다.
란코프 교수는 14일 오전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한국정치학회 광복 6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할 ‘소련정치국 결정문과 1946∼1948년 북한 정부의 출현’이라는 논문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공개한다.
▼란코프 교수 약력
196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1986년 레닌그라드국립대 졸업
1989년 레닌그라드국립대 한국역사학 박사
1989∼92년 레닌그라드국립대 조교수
1996년 호주국립대(ANU) 한국학 교수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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