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도청 X파일]삼성 “위법여부 따진후 법적대응”

  • 입력 2005년 7월 22일 03시 16분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장이 MBC의 옛 국가안전기획부 불법도청 테이프와 관련해 21일 서울남부지법에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서. 연합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장이 MBC의 옛 국가안전기획부 불법도청 테이프와 관련해 21일 서울남부지법에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서. 연합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1997년 대선 직전 중앙일간지 사주와 대기업 고위 인사가 주고받은 대선자금 관련 대화 내용을 불법 도청한 녹음테이프의 내용 일부가 21일 MBC와 KBS에 의해 공개되자 관련 당사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열린우리당 전병헌(田炳憲) 대변인은 “부도덕한 권력연장과 유지를 위해 존재했던 어두웠던 시절의 진실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같은 당 오영식(吳泳食) 원내 공보담당 부대표도 “정쟁(政爭)의 도구로 이용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과거사 진상규명 차원에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 정책위의장은 “불법도청 행위는 명백하게 밝혀져야 하고 이번에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인정된다면 관련자들의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당은 진상 규명을 촉구하면서도 불법 도청 내용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반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도청 내용 공개와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민노당 홍승하(洪丞河) 대변인은 “국회 차원의 진상규명과 대응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고, 민주당 유종필(柳鍾珌) 대변인도 “국정원 자체조사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국회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할 것이 없다”며 “당분간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측은 “김 전 대통령 시절에 불법 도청이 있었다고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그런 (불법 도청한 내용) 보고를 받지도 않았고, 받으려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삼성=MBC와 KBS가 이날 오후 9시 뉴스를 통해 테이프 내용 일부를 보도한 직후 삼성은 구조조정본부 차원에서 심야회의를 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구조본 관계자는 “도청 내용을 보도할 경우 위법하다고 법원에서 판단한 만큼 언론사에서 소모적인 취재경쟁을 확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은 특히 당초 우려한 MBC보다 KBS에서 도청 녹취록 내용이 보다 상세히 보도된 데 대해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삼성 관계자는 “우리가 판단하기엔 녹취록과 도청 테이프의 내용이 다른 것으로 안다”면서 “녹취록 공개에 대한 법적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도청을 한 전 안기부 직원이 녹음테이프를 삼성 측에 3억 원에 살 것을 제의했으나 삼성 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홍석현(洪錫炫·전 중앙일보 사장) 주미대사=홍 대사는 이날 대사관에 출근한 뒤 점심 무렵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가처분신청을 낸 이유를 묻자 “내가 알지 못하는 내용이 내가 말한 것으로 나간다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홍 대사는 이어 “7년 전의 일이 어떻게 다 기억이 나겠느냐”고 덧붙였다. 기자들이 향후 대응 방향을 묻자 홍 대사는 “내가 대응할 게 뭐가 있겠느냐”고 대답했다.

홍 대사는 또 “MBC 이상호 기자가 확인 취재를 위해 인터뷰를 신청한 일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홍 대사는 이날 정상 출근해 오전 10시(현지 시간) 대사관 정례회의를 주재하고 점심식사를 위해 외출하다 기자들과 몇 마디 일문일답을 가졌으나 더 이상의 얘기는 하지 않았다.

▽검찰=녹음테이프에 문제가 되는 기업이 추석을 앞두고 수백만∼수천만 원의 떡값을 전달할 정치인 및 전현직 검찰 간부의 리스트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포함됐다는 MBC 보도와 관련해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사실 여부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지켜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도 “의혹을 털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 일선에선 문제가 되는 기업과 ‘인연’이 있는 전현직 간부들을 놓고 말들이 오가고 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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