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홍-이 대화’ 이외의 도청 테이프가 실제로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1997년 대선에서 여야 유력 후보 및 관련자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도청이 이뤄졌고, 그중 일부가 유출돼 나돌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한 전직 직원은 “1999년 천용택(千容宅) 원장 시절, 감찰부서에서 ‘미림팀’의 팀장이었던 K 씨 집을 급습해 다량의 도청 테이프를 회수한 적이 있다”며 “그러나 이 중 30∼40개가 회수가 안 됐고 이것이 전직 직원들을 통해 외부로 유출됐다”고 말했다.
당시 회수된 테이프들은 대부분 소각 처리됐으나 일부는 당시 여권의 핵심인사들에게 전달됐다는 얘기도 있다. 실제로 구여권 내에서는 “모 후보와 모 유력인사 간의 ‘대통령-총리 밀약’ 내용이 담긴 테이프가 있다”는 얘기도 나돌았었다. 전직 국정원 직원 A 씨는 “도청 테이프를 회수할 때 그 일부가 당시 정권 실세 손에 들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파문의 당사자인 홍 전 사장도 다수의 도청 테이프가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안기부 도청사건 보도가 터지기 전인 12일 “김대중 정권 초기에 안기부에서 도청테이프 수백 개가 흘러나와 돌아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중에 나와 관계된 것만 요즘 (소문이) 나도는 건 이상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회수가 안 된 테이프 중에는 ‘메가톤급 폭탄’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여권의 한 인사는 “지금 드러난 도청테이프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며 “내용이 모두 공개된다면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도청테이프에 실명이 거론된 서상목(徐相穆) 전 의원은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 당시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때인데 김대중(金大中) 후보 쪽에 대해 도청을 안 했겠느냐”며 “그런데 왜 그쪽 녹취록은 안 나오고 이회창(李會昌) 후보 쪽만 나오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파괴력이 더 큰 도청테이프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인 셈이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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