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이 자행한 불법도청… 전모 밝혀야

  • 입력 2005년 7월 2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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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盧대통령홍석현 주미대사의 거취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고민하는 盧대통령
홍석현 주미대사의 거취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5일 과거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 의혹에 대해 국정원에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면서 이른바 ‘X파일’ 파문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불법도청 의혹에 대한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는 25일 성명서를 발표, “사생활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한 정부가 이 법을 위반해 장기간 대량 불법도청 행위를 자행했다”고 비판했다.

변협은 “공무원이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불법 유출함으로써 국가정보 관리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며 “검찰은 즉각 수사를 개시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발언하는 순간 현행범”=검찰은 X파일의 불법도청 행위 수사에 대해 난색을 표해 왔다. 통신비밀보호법상 공소시효(7년)가 지났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안기부 전직 직원들의 기밀 누설로 상황이 달라졌다. 한 검찰 간부는 “안기부 직원들의 이 같은 행태는 발언 즉시 범죄가 된다”고 말했다. 공소시효도 이때부터 새롭게 시작된다. 공소시효는 7년. 얼마든지 수사가 가능하다.

국가정보원직원법 제17조는 ‘모든 직원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제32조는 이를 위반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법도청 전반에 대한 수사 불가피=안기부 직원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경우 불법도청 전반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

이들의 국정원직원법 위반 행위를 수사하기 위해서는 원인 행위에 대한 수사가 당연히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직무상 기밀(불법도청 내용)’을 누설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불법도청 행위’ 자체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것.

한 중견 검사는 “범죄 행위의 원인 관계를 모르고서는 현재 범죄 행위를 제대로 수사할 수 없기 때문에 안기부 직원들이 저지른 불법도청 전반에 대한 수사가 필연적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들이 주장한 ‘8000여 개 불법도청 테이프’의 실체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MBC 등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할 경우 이를 계기로 과거 불법도청 사건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이 보도한 기자와 언론사에 대해 “보도 근거가 뭐냐”라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과거 사건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것.

이 과정에서 문제의 불법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등을 입수해 보도한 언론사와 해당 기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미국에 체류 중인 전직 안기부 직원 김기삼(40) 씨에 대해 인터폴 수배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도청팀인 미림팀 팀장을 지낸 공모(58) 씨도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안기부의 불법도청 의혹”이라고 입을 모은다. 불법도청된 대화 내용도 문제이지만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도청의 불법성이 더 심각하다는 것.

▽정보맨들의 빗나간 행태=X파일 공개 파문의 중심에는 ‘직무상 취득한 정보는 무덤까지 안고 간다’는 안기부 직원들이 등장한다. 전직 직원은 물론 현직 직원까지 가세해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들은 앞 다퉈 개별적으로 언론 접촉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불법도청에 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일부 전직 직원은 “현 정부 내에서도 도청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전 미림팀장 공 씨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기부의 도청 실태를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적나라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일부 언론은 이를 그대로 보도해 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 다른 전직 직원은 “김대중(金大中) 정부 초기 국정원 직원을 대량 면직한 데 따른 상실감이 큰 데다 국정원 특유의 파벌 싸움이 가세하면서 무차별 폭로전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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