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동안 안기부와 국정원이 ‘휴대전화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것과는 달리 1996년부터 휴대전화 도청을 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국정원(원장 김승규·金昇圭)은 5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청사에서 이른바 ‘안기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도청팀인 ‘미림팀’ 운영 실태에 관한 중간 조사 결과와 함께 이 같은 사실을 함께 발표했다. 국정원은 이날 대국민 사과성명도 냈다.
이날 발표는 DJ정부 시절 대통령과 고위 인사들이 “도청에 유린당한 현 정부에서 불법 감청은 있을 수 없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국가기관이 휴대전화까지 도청한 사실을 시인한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에서는 불법적인 감청 행위가 일절 없다”는 이날 청와대의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유선 및 휴대전화 등의 도청이 지금도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국정원 관계자는 “지금도 이동통신회사 교환기에 감청 장비를 설치하면 휴대전화 감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국정원 김만복(金萬福) 기획조정실장은 “민주화 이후에도 도청 관행이 근절되지 않은 것은 국정원 지휘부가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이를 통해) 용이하게 첩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날 “1996년 1월 아날로그 휴대전화 감청 장비 4세트를 도입해 1999년 12월까지 운용했으며 1996년부터는 디지털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는 장비를 자체 개발해 2002년 3월까지 불법 감청에도 일부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2년 3월 관련 감청 장비를 모두 분해해 소각하는 한편 그때까지의 불법 감청 내용은 모두 삭제해 현재 관련 테이프나 녹취록, 파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정원 이상업(李相業) 2차장은 미림팀 수사와 관련해 “1999년 3월 국정원에서 해직된 미림팀장 공운영(孔運泳) 씨가 그해 9월 재미교포 박인회 씨에게 삼성과의 접촉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박 씨는 9월 하순 삼성 이학수(李鶴洙) 구조조정본부장에게 대선자금 관련 녹취록을 제시하며 5억 원을 요구했으나 결국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도청과 감청: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을 ‘전기통신 내용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전자장비나 기계장치로 엿듣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은 범죄 수사나 국가 안전을 위해 법원의 허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면 합법적으로 감청할 수 있다. 이 같은 목적과 절차를 무시한 불법 감청은 도청이 된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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