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과거 불법 감청(도청) 행위 시인과 관련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을 정면으로 반박했고, 야당의 특별검사 도입 주장에 대해선 “정략적으로 면피하기 위해 엉뚱하게 헛방 대포만 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검찰의 선(先) 도청 수사→특별법 제정을 통해 테이프에 담긴 정경유착 수사 및 공개→ 미진하면 특검 도입 또는 국정조사’라는 해법을 내놨다.
▽선(先)검찰 수사, 특검 도입 반대=노 대통령은 국정원 도청 사건을 우선 검찰 수사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처음부터 검찰을 못 믿겠다는 것은 국가가 갖고 있는 제도를 구체적이고 명백한 사유도 없이 무력화시켜 버리는 발상”이라며 “대통령으로서 정부 조직을 함부로 무력화시키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야당의 특별검사제 법안 도입 주장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
또 도청 테이프에 담긴 불법 행위까지 포괄적으로 특검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서는 “테이프 안에 들어 있는 사건이 몇 건인지, 어떤 사건인지도 모르지 않느냐. 수사대상이 특정돼 있지도 않은데 마구잡이로 특검을 하자는 것은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또 “사건만 터지면 전부 특검으로 가면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겠느냐”고 ‘특검 만능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개혁 미진을 이유로 검찰에 대한 불신감을 여러 차례 표시했지만 이날은 “대한민국 검찰 조직이 도청 사건 하나 조사하지 못할 만큼 믿을 수 없는 조직이냐”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사건으로 국정원이 거의 초토화된 상황에서 검찰까지 무력화되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깔린 듯했다. 검찰을 통해 국정원을 잡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검과 별개로 특별법은 반드시 필요=노 대통령은 “테이프를 어디까지 공개할 것이냐는 도청 수사와는 별개의 문제”라며 테이프 공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이 필수임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100%가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라고 해도 위법을 감행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가 없다. 처벌을 면제시켜 주지 않으면 대통령도 공개를 명령할 수 없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지 않고는 안 된다”고 했다.
도청 테이프 안에는 △수사를 해야 할 범죄 사실 △범죄 사실은 아니지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사안 △공개돼서는 안 될 사생활 등이 뒤엉켜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공개할지, 나아가 이 자료를 보존할지 폐기할지, 보존한다면 어디에서 보존할지 등을 정하기 위해서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특검에 그런 권한을 주자는 야당 주장에는 “상식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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