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중구 남산동 대한적십자사 등 전국 12개 남북이산가족 화상(畵像)상봉장에서는 화상을 통해 50여 년 만에 혈육을 만난 이산가족들의 기쁨과 탄식이 교차했다. 비록 손으로 만질 수는 없었지만 이들은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복받쳐 오열하는 등 실제 대면상봉에 못지않은 장면을 연출했다.
○…이날 오전 서울 대한적십자사에 마련된 상봉장에서는 북에 남겨 두고 온 두 딸을 57년 만에 만나기 위해 온 김매녀(98)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북녘 딸들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현장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사망한 남편과 1남 3녀를 둔 김 할머니는 1948년 큰딸 황보패(78) 씨와 작은딸 학실(76) 씨를 남겨 두고 월남했다. 그러나 그 길은 김 할머니 가족에게 기나긴 이별의 시작이었다.
김 할머니는 그동안 딸의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중국을 오가기도 했지만 지난해 뇌중풍(뇌졸중)으로 입원하면서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 할머니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앰뷸런스를 타고 이날 상봉장에 도착했다. 그는 두 딸의 외침에 잠시 눈을 뜨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고개를 숙여 가족들을 애타게 했다.
막내딸 봉숙(69) 씨는 “언니들을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설레셨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1950년 의용군으로 징병돼 가족과 생이별한 북측의 정병연(73) 씨도 이날 55년 만에 여동생 영애(69) 씨와 영임(67) 씨, 남동생 인걸(63) 씨를 만났다.
희끗희끗한 백발에 보청기를 낀 정 씨가 화면에 나타나자 영애 씨는 “오빠, 오빠 맞네. 우리 언제 만나” 하며 절규했다.
정 씨는 남녘 동생들의 이름을 부르고 “누가 우리 집안을 이렇게 갈라놓았느냐”며 55년의 긴 이별을 원통해했다.
○…“여보, 말씀 좀 해 보세요.” “아버지, 어머니가 왔어요. 아버지….”
이날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에도 1·4후퇴 때 헤어진 아내(77)와 딸(60), 아들(58)을 만나기 위해 강근형(93) 할아버지가 링거병이 달린 휠체어에 탄 채 나왔다.
그러나 강 할아버지는 지난해 교통사고를 당하고 합병증까지 겹치면서 이제는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상태.
54년 만에 아버지에게 두 오누이는 큰절을 올렸지만 정작 아버지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강 할아버지는 간신히 손을 들어 화면을 가리키며 우물우물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끝내 한마디도 못한 채 다시 휠체어에 실려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당신과 헤어진 뒤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운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살아왔어요”라는 아내의 말에 강 할아버지 얼굴에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생면부지의 손자들을 화상으로 만난 이을선(94) 할머니는 북측 가족이 6·25전쟁 때 헤어진 작은아들이 숨졌다는 소식을전하면서 4, 5장의 사진을 내보이자 “아들아”를 외치며 모니터로 다가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번 첫 화상상봉을 통해 남측에서는 상봉자 20명과 그 동반가족 57명이 북에 있는 가족 50명을, 북측에서는 상봉자 20명이 남측 가족 79명을 각각 상봉해 모두 226명이 참여했다.
이날 상봉행사에서 최고령자인 이령(100) 할아버지는 북에 있는 손자 서강훈(47) 씨와 손자며느리를, 또 최연소자인 북측의 이기서(70) 씨는 남측에 동생 이기설(61) 씨를 만났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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