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수사팀은 또 한 차례 심하게 흔들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국가권력 남용에 의한 인권침해 범죄 등에 대한 민·형사상 시효 배제를 언급했기 때문.
당장 수사팀에선 “수사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수사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 “도대체 갈피를 못 잡겠다”는 얘기들이 나왔다.
당초 검찰 수사는 1997년 안기부 비밀 도청 조직 ‘미림팀’의 도청과 1999년 유출된 도청 자료를 주요 수사 대상으로 하고 출발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삼성그룹의 1997년 대선 자금 관련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내부에서 논란이 많았다.
수사 착수 직후인 지난달 27일 도청 자료를 유출한 ‘미림팀장’ 공운영(孔運泳·구속) 씨 집에서 274개의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등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수사 대상이 대폭 늘어나면서 검찰 내부가 술렁거렸다. 도청 테이프 274개의 내용에 대한 수사를 놓고 또 한 차례 내부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 내에서는 “법을 어겨가며 수사할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고 검찰도 이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대부분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는 점도 ‘수사 불가’ 의견의 근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5일 국정원이 자체 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인 2002년 3월까지 도청이 이뤄졌음을 고백하면서 상황은 또 한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정치권에선 도청 테이프 내용 공개와 수사 착수 여부를 놓고 특별검사제 법안과 특별법 도입 공방이 벌어졌다. 시민단체는 시민단체대로 삼성 관련 대화 내용에 대한 수사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래저래 어지러운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나서 공소시효 배제를 언급하는 바람에 상황이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됐다.
한 검사는 “고발이 이뤄진 만큼 수사는 하겠지만 이미 상황은 검찰 손을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사검사들은 이 사건이 ‘정치사건’이 될까 걱정하고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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