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스웨덴의 어떤 정치가(백작)가 죽으면서 남긴 한마디라고 한다. 권력 무대의 한복판에서 평생을 정치 놀음만 지켜본 정객의 비통한 유언! 권력의 실패, 타락과 독선을 파헤친 명저(名著) ‘바보들의 행진’(바버라 터크먼 저)의 번역판 서문에 나오는 얘기다.
지금 한국의 권력 중추가 고장 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론조사는 정권에 표를 준 사람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한다. 여당과 정부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생겨 조율은 어렵고 생산성은 무너졌다. ‘거두(巨頭) 11인 모임’이 뭔가 해 주기를 기대도 해 보았으나 그것도 난망(難望)인 듯하다. 거물들의 실없는 잡담장이 되고, 의중이나 살피는 모임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대통령은 ‘나 홀로 정치’의 블랙홀에 빠져 버렸다. 야당에 대연정(大聯政)을 제의하고 정권을 내놓겠다고 했다. 의도대로라면 큰 파도가 일었어야 한다. 야당 내부의 논란이 커지고, 국민이 갑론을박하고, 좋든 궂든 정치가 꿈틀거려야 한다. 그런데 더위 먹은 듯 정치는 꿈쩍도 않는다. 북한이 핵 보유 ‘선언’을 해도 보유 ‘주장’으로 여기며 코웃음 치는 것을 연상케 한다.
‘통풍(通風)의 정치’라는 말이 있었다. 20년도 넘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어느 칼럼에 등장한 표현이다. 전두환 정권의 억압 폐쇄, 질식할 듯한 ‘나쁜 정치’ 속에 제발 ‘바람 좀 통하게 하라’는 호소였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시대에 통풍과 소통(疏通)의 정치를 말하게 될 줄이야! 민주화 정부 3대째, 노무현 정치의 신명을 잃어버린 무풍(無風), 무기력, 무반응에 질식할 것만 같다.
노무현 정치의 본질은 바람이다. 처음부터 조직과 생산과 실적과 설득이 아니라 저항과 투옥과 청문회와 낙선과 눈물과 감성이었다. 그것들이 일으킨 바람이 대통령에까지 밀어 올렸다. 그 ‘바람의 아들’이 정상에 오른 시대에, 임기의 반이나 남겨 놓고 통치권 누수(漏水)보다 더 지독한 무풍 증후군에 빠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무서운 것은 무풍, 무반응과 ‘나 홀로 정치’가 상호작용할 것 같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바람이라는 무기가 통하지 않을수록 더욱 바람에 집착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강한 데서 싸우라’는 기훈(棋訓)처럼 바람만 일으키려 몰두하고, 국민은 더더욱 무관심에 빠지는 ‘조풍(造風)-무풍의 악순환’이다.
이미 악순환과 파탄의 조짐은 보인다. ‘나 홀로 정치’의 생산기지인 청와대의 참모진은 철저히 회전문(回轉門) 돌리듯 내부 자리를 돌아가며 맡고 있다. 국정의 인사(人事)를 좌우하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하는 자리가 그 안에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다. 대통령국정상황실장에 대통령제도개선비서관이 다시 앉았는데 그는 대통령민정비서관을 하던 ‘부산 386의 대명사’다. 참여기획→정무기획→의전→국정상황→의전으로 빙빙 돈 인물도 있다.
김영삼 정부는 ‘소통령’이던 아들의 구속 이후 무풍, 무기력에 빠진 뒤 끝내 국가 부도 사태를 빚었다. 김대중 정부도 세 아들 문제와 더불어 ‘식물정부’로 전락했다. 참여정부는 대통령의 아들 구속 없이도 활기, 소통, 반응도 잃어버리는 이상하고 특별한 폐색 증세를 보인다. 그리고 폐색증을 유발한 참모들은 더욱 굳게 뭉치고 있다. 그래서 국정의 인재 기용 폭을 더 옥죄고, 소통과 통풍을 더 가로막을 것이다.
무사(無私)와 진정성을 눈물겹게 호소하며 정치에만 매달리는 대통령, 세찬 정치바람이 휩쓸고 간 빈 터에서 경제나 살려 달라고 등 돌린 국민. 진정 ‘하찮은 자들이 다스리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 다오. 청와대, 386 그리고 ‘부산 갈매기’들이여….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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