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노량바다에 서다

  • 입력 2005년 8월 24일 03시 05분


바닷물이 빠지면 소년들은 고철을 주우러 쏘다녔다. 그러다 지치면 학섬이라고도 하고 애기섬이라고도 하는 작고 예쁜 섬에 들어가 놀았다. 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있고, 물이 들면 어른들이 배를 가지고 와야만 빠져나올 수 있는 섬이었다.

소년들이 찾아 헤매던 고철은 임진왜란 때 바다에 빠져 죽은 왜군들의 병장기라고 했다. 400여 년 전의 전쟁이지만 소년들은 시간에 개의치 않았다. 알 수도 없었다. 이순신 장군이 무찌른 왜적들의 것이라는 얘기에 소년들은 더욱 신이 났을 뿐이다.

소년들에게 노량(露梁)은 그런 바다였다. 경남 하동군 금남면 노량, 노량은 내게 그런 바다였다.

나이가 들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몇 년 전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그 바다가 이순신의 바다임을 알았다.

‘이제 죽기를 원하나이다.’ 김훈은 노량수로로 몰려드는 적을 앞에 두고 이순신이 이렇게 빌었다고 썼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기 위해 도선(渡船)을 타고 건너던 그 수로가 이순신의 마지막 바다였다. 지금은 남해대교가 걸려 있는 바로 그 수로다.

‘칼의 노래’를 읽고 또 읽었다. 술에 취한 밤에도 한 장 또 한 장을 넘기며 그 바다를 더듬었다. 분명했다. 이순신은 죽기를 원했다. 그는 죽어서 살았다. ‘사즉생(死卽生)’은 그 무슨 싸움을 독려하기 위한 구호가 아니었다. 그건 오직 죽음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하고자 하는 어느 사내의 신음 같은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젠가 ‘칼의 노래’를 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스스로 사지(死地)를 찾아 나서 그 속에서 오히려 생(生)을 건져 올린 사람이다. 윤태영 대통령제1부속실장이 쓴 국정일기(12) ‘옳은 길이라면 주저 없이 간다’를 보면 그런 그의 이력이 고스란히 나와 있다.

부산 사람들은 그에게 ‘호남 전향자’라는 굴레를 씌워 거듭 사약을 내렸지만 그는 “농부가 어떻게 밭을 탓하겠습니까”라며 부산 민심을 위로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지금 지역구도와의 전쟁을 노량해전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윤 실장은 노 대통령이 벌여 온 싸움을 ‘고단한 전쟁’이라고 했다. 마치 이순신이 ‘7년 전쟁’을 고단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런데 왜일까? 왜 지금 그에게선 마지막 바다에서 죽기를 원했던 이순신의 충(忠)과 무(武)가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그가 꺼내든 대연정(大聯政)이란 것의 허망함 때문일까?

예전 DJ의 국민회의를 담당하던 시절 동향 선배에게서 “경상도 놈이 왜 거길 출입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말문이 막혔다. 그건 왜적보다 더한 우리 안의 흉적(凶賊)이었다.

그래도 노 대통령이 치켜든 대연정의 칼에서는 검의 울림이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중의원을 해산하고 자민당을 조각낸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검에서는 분명한 사즉생의 검기(劍氣)가 전해진다.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이번 주말 노량해전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노 대통령도 시간을 내 드라마를 봤으면 좋겠다. 왜 그의 검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고 있는지 그 비밀이 나올지도 모른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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