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종구]軍지휘권 위협하는 사법개혁

  • 입력 2005년 8월 25일 03시 22분


코멘트
핵 기지를 점령한 러시아의 반란군이 시한부로 미국에 대한 핵 공격을 예고하자 미국 핵잠수함 앨라배마호는 대응 핵 공격 명령을 수행 중 사령부와의 통신이 두절된다. 당초 명령 받은 시간에 핵 공격을 강행하려는 함장과 통신을 복구해 사령부의 최종 지시를 확인하자는 부함장의 의견이 대립되면서 함상 반란에 가까운 상황으로 전개된다. 반전을 거듭하다 극적으로 통신이 복구돼 공격 명령의 취소가 확인되고 일촉즉발이던 핵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의 줄거리다. 현명하게 대응한 부함장은 함장으로 승진하고 함장은 명예롭게 전역했다. 사문(査問)장교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수석장교 두 사람이 의견차를 해소하지 못하고 반란 사태에까지 이른 것은 유감이다. 두 사람의 행위는 합법이기도 하고 한편 불법이기도 하나 모두 미 해군의 전통과 국익에는 부합하는 것이다.” 때로는 합법성보다는 합목적성이 우선하는 군(軍)의 특성을 잘 보여 주는 영화다.

얼마 전 사법개혁추진위원회는 각 군의 사단급 이상에 설치되어 있는 군 검찰과 법원을 폐지해 국방부로 통합하는 군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제까지 각 군의 사단장급 이상 지휘관이 행사하던 군 검찰의 결정과 군사법원의 재판 결과에 대한 승인, 확인, 형 면제 등의 권한을 국방부 장관의 관할로 일원화한다는 것이 개혁의 골자다. 아울러 군사법원의 심판관에서 일반 병과의 장교를 배제하고 배심제도를 도입하며, 군 수사기관에 대한 군 검찰의 지휘권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개혁안은 군의 생명인 지휘권의 확립 및 군 사법기관의 존재 의의에 비춰볼 때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낸다. 일반 사법권 내지 검찰권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군 사법부서는 지휘권 확보를 통해 군 기강을 확립하고 전력을 극대화함으로써 국가의 안전보장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군의 특수성에 부응하기 위해 별도로 설치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군 사법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지휘권 확립에 기여하는 것이다. 군 내부의 사정과 군사문제에 정통한 일반장교를 재판에 참여시키는 것도 군의 이 같은 특수성 때문이다.

지휘관이 군 사법의 관할관으로서 소추와 판결에 대해 사법권의 일부를 행사하는 것은 군 기강 확립을 위해서다. 즉 지휘관에게는, 중죄를 지은 병사도 감형해 적지에 결사대로 보낼 수 있고 전공을 참작하여 감형할 수도 있는 권한이 필요하다.

나아가 군은 평시에도 고강도의 훈련을 통해 높은 수준의 전력을 유지해야 하며 적의 동태나 작전계획에 따라 자주 이동하고 항상 기강과 지휘권이 확립돼야 하는 조직이다. 평시와 전시를 구분해 군 사법기능을 조절하기도 쉽지 않다.

지휘권과 사법권의 발동이 유리되면 군 내부의 범법 행위에 대한 예방 기능과 처리의 신속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개혁안이 원안대로 실현되면 부하 장교와 부사관은 지휘관의 명령과 배치될지도 모를 사법처리에 대한 염려 때문에 복종에 주저할 경우도 생길 것이다. 명백히 불법한 명령에는 불복해야 할 것이지만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와 같이 ‘합법이기도 하고 한편 불법이기도 하지만 군의 전통과 국익에 부합하는 경우’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개혁안의 신중한 처리가 요망되는 이유다.

민주국가에서 병영 밖의 시민이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병영 내의 군기가 엄정해야 한다. 과거 ‘재판을 다시 하라’는 식으로 독선적이던 일부 지휘관의 잘못된 행태가 군 사법개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결과적으로 군의 지휘권 약화와 안보 불안을 초래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김종구 한백합동법률사무소 고문변호사 전 법무부 장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