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대통령의 拒逆

  • 입력 2005년 8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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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자신이 “돛단배처럼 홀로 떠 있는 신세”라고 했다.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라는 말도 했다. 대통령이 세상에 던지는 담론(談論)의 진정성이 좀처럼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차 나라의 위기로 현실화될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해도 씨가 먹히지 않아 외롭고 괴롭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데도 알아주지 않으니 섭섭하고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한다. ‘지지율 29% 대통령’으로 국정을 계속 운영하는 것이 책임정치에 맞는 것인가, 적절한 것인가 고민이라고 한다. 내각제 같으면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 재신임을 물으련만 대통령제에서 여론조사 결과 가지고 대통령 직을 불쑥 내놓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없어 고심 중이라고 한다. 확신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는 기세다.

걸핏하면 자리를 내놓겠다고 하니 그는 분명 ‘별난 대통령’이다. 그러나 별난 게 반드시 시대를 앞서 가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 구현(具顯)되는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스스로 그렇다고 믿고, 또 믿는 나머지 ‘자기 확신의 덫’에 빠지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현실성도, 당위성도 없는 연정(聯政)에 그토록 집착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노 대통령은 연정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 요소인 분열적 요소, 즉 불신과 적대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1야당인 한나라당에 권력을 통째로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만의 당위성’일 뿐이다. 첫째, 다수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일방적인 논리로 당위성을 강요할 수는 없다. 둘째, “위헌(違憲)이고 아니고 하는 형식논리를 가지고 게임하면 안 된다”는 식의 초(超)헌법적 발상으로 당위성을 내세울 수는 없다. 셋째, 설령 인위적 연정으로 권력 구조를 바꾼다고 해서 분열적 요소가 극복되리란 전망을 찾을 수 없다. 노무현 정권이 지난 2년 반 동안 보인 편 가르기식 리더십에 비춰 볼 때 더욱 그렇다.

한나라당은 이미 “입이 아파 더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현실성 없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는 열정(熱情)과 책임감, 균형 감각이 손꼽힌다. 많은 사람은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의 ‘변화에 대한 열정’을 평가했다. 그러나 책임감과 균형 감각 없는 열정은 오히려 독선(獨善)과 아집(我執)의 독(毒)이 될 위험이 크다. 지도자의 책임은 역사적 책임만이 아니다. 국민의 실제적인 삶인 민생에 대한 책임이 더 크다. 균형 감각은 갈등을 조정하는 힘이자 현실과 이상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그렇게 본다면 노 대통령은 지금 지도자로서 책임감과 균형 감각에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실 나는 이제 노 대통령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무슨 말을 한들 무오류(無誤謬)의 자기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대통령의 귀에 들리겠는가. 하지만 이 말만은 해야겠다. 지난해 탄핵에서 대통령을 구해 준 많은 사람들의 선의(善意)를 왜곡하지 말 것을. 그들을 자꾸 힘들게 하고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을. 그들의 입에서조차 ‘정 못 하겠으면 그만두시오’란 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노 대통령은 다시 한번 크게 숨을 쉬고 세상을 둘러봐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라는 자신의 진정성과 열정이 왜 외면당하고 있는지, 왜 국민과 동떨어지고 ‘돛단배 신세’가 됐는지 겸허한 눈으로 살펴봐야 한다. 무엇이 지도자의 진정한 책임감이고 균형 감각인지 마음을 비우고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과감한 거역(拒逆)’을 하고 있다는 민심과 “국민은 이제 훌륭하다는 수준을 넘어서 감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2004년 5월 15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기각 직후)고 말했던 민심의 주체가 과연 달라진 것인지도 돌아봐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침묵해야 한다. ‘말솜씨’는 이제 그만 보여 줘도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 스스로 자신에게 거역하는 일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거역한다는 것인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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