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가족 이산상봉]“부모님은?…너 혼자 남았구나”

“아들아 내 아들아”
26일 제1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린 금강산호텔에서 남측 이철근 할머니(95·왼쪽)가 북측 아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다. 금강산=연합뉴스

26일 금강산에서 남북이 또다시 울었다. 피를 나눈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이산 반세기라는 세월의 골을 넘기에 충분했다.

31일까지 금강산에서 1, 2차로 나뉘어 진행되는 제1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6일 오후 3시 첫 단체상봉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이번상봉은 지난해 7월 10차 상봉에 이어 13개월 만에 재개된 것이며 1차상봉단에는 국군포로 2가족이 포함됐다. 이날 상봉에 참가한 가족은 남측 99가족, 북측 100가족으로 모두 199가족이었다.

○…이날 오후 금강산호텔 2층 상봉장에서 남쪽의 막내 동생 정한현(69)씨를 얼싸안은 진현(79) 씨는 긴 통곡으로 55년간의 사무친 그리움을 달랬다.

“부모님은, 부모님은 어떻게 되셨나?” 손을 부여잡고 애타게 묻는형 진현 씨에게 한현 씨는 “다 돌아가셨다. 형님도 형수님도…”라며 울먹였다. 한현 씨의 흐느낌은 이내 오열로 바뀌었다.

1950년 7월 말 친구들과 함께 국군에 입대했던 진현 씨는 경북 영천 부근에서 주둔하던 중 부대원과 함께 인민군 포로가 돼 북행길에 오르게 됐다. 전쟁이 끝나고 전사통지서도 날아왔지만 부모님은 총명했던 셋째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살아만 있어 준다면, 북측에라도 살아만 있어 준다면 언젠가 만날수 있겠지’라며 기다리던 부모님은 그러나 한을 풀지 못한 채 1970년과 1972년 각각 세상을 떠났다.

“니 혼자 남았구나.” 붉어진 눈시울을 닦아 내며 깊은 한숨을 내쉰 진현 씨는 고향인 경북 경주의 집마당에서 햇볕 좋은 날 동생과 장기를 두던 일을 회상하면서 “헤어질 때 어린 중학생이었던 네가 벌써 할아버지가 되었구나”라며 동생의 얼굴을 매만졌다.

“너를 두고 내가 어떻게 죽느냐”는 북녘 형의 마음은 어느새 이틀 뒤 맞을 기약 없는 이별을 걱정하는 듯했다.

○…“비록 형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형님의 핏줄을 만난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찹니다.”

이날 국군포로 출신인 형 오현원(사망) 씨의 부인 홍재화(69) 씨와 아들 영철(39) 씨를 만난 현웅(62) 씨는 형수와 조카를 꼭 끌어안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오 씨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조카지만 오늘 보니 눈매가 형님과 닮았다”며 불과 1년 전 숨진 형을 그리워했다.

7남매 중 맏아들인 현원 씨의 소식이 끊긴 것은 1950년 12월 20일경. 당시 20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한 형은 서울 수복 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됐다.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체념하고 있던 현웅 씨에게 그리운 형의 소식이 전해진 것은 49년의 세월이 흐른 1999년. 형 현원 씨가 남측 가족을 찾고 있다는 자막이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에 나온 것을 보고 곧바로 대한적십자사에 문의한 결과 형의 생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현웅 씨는 즉각 상봉 신청을 했지만 다른 이산가족들보다 나이가 적은 탓에 상봉 기회는 6년이 지난 지금에야 찾아 왔고 그 사이 형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상태였다. 현웅 씨는 자강도 만포시에 사는 형의 가족들에게 내복과 면장갑, 목도리 등을 전달하는 것으로 한을 달랬다.

○…1·4후퇴 때 황해도 연백에서 젖먹이 두 딸을 친척집에 맡겨둔 채 남측으로 피란을 내려왔던 김기섬(86) 할머니도 이제는 환갑을 넘겨버린 두 딸과 감격의 상봉을 했다.

백발이 성성해진 희순(63) 희자(61) 씨 자매에게 “엄마가 ‘열 밤만자고 올게’라고 했는데 이제야 왔다. 내가 너희들에게 해주고 싶은것이 너무 많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남측 최고령자인 박간남(97) 할머니는 북측 아들 김시하 씨가 이미 세상을 떠나 손자와 손녀를 만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박 씨가 상봉장에 들어서자 손자 손녀는 “할머니 저희가 시하 아들딸입니다”

라며 박 할머니의 품에 안겼고, 박할머니는 “애비를 많이 닮았구나” 라며 두 손을 꼭 잡았다. 박 할머니는 북측 손자들이 가져온 앨범 속의 사진을 보면서 “아이고 아이고…”라며 눈물짓느라 말을 잊지 못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금강산=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