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도청문건 등장 정치인들 “휴대전화끼리 통화도 새나갔다”

  • 입력 2005년 9월 28일 03시 02분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이 ‘국가정보원에 의한 도청 사례’라며 폭로한 문건이 최근 검찰수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되자 당시 도청 문건에 통화 당사자로 등장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본보가 27일 도청 문건에 나오는 38명의 여야 정치인 중 15명을 접촉해 문건 내용대로 통화한 적이 있었는지 등을 물어본 결과 특히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인사들은 휴대전화 대 휴대전화 간 통화 내용을 도청당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의 조직적인 도청 의혹 사실이 확인된 만큼 당시 국정원 간부들의 국회 증인 채택, 특별검사제를 통한 수사와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휴대전화 대 휴대전화’ 통화 내용 도청당했다=2002년 12월 2일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도청 문건’을 폭로했던 열린우리당 이부영(李富榮) 고문은 “내 휴대전화로 상대방의 휴대전화에 건 것도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이 당시 두 차례에 걸쳐 폭로한 도청 문건에 따르면 이 고문은 4차례 도청을 당한 것으로 돼 있다.

2002년 3월 26일 이 고문과 통화한 것으로 돼 있는 김홍신(金洪信) 전 의원도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통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의원, 이성헌(李性憲) 전 의원도 “당시에 일반전화는 도청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 명의로 된 휴대전화를 2, 3개 갖고 다녔다”며 “휴대전화 간의 통화가 도청된 것 같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도청은 휴대용 감청장비인 카스(CAS)를 통해 전파를 직접 가로채거나, 휴대전화 중계기와 중계기 사이를 연결하는 유선중계통신망을 감청하는 장비인 R-2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국정원은 그동안 “CAS는 2001년 4월 이후 사용하지 않았고 R-2는 120회선만 접속이 가능해 도청 성공률이 0.4%밖에 되지 않는다”며 2002년 당시의 도청 가능성을 사실상 부인해 왔다. 2002년에 국회의사당 주변에서 휴대전화 간 통화가 집중적으로 도청당한 것에 비춰볼 때 국정원은 서울 여의도 지역에서 R-2를 집중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나라당 김용갑(金容甲) 김기춘(金淇春) 의원 등 일부 인사들은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의 유선전화로 통화한 것이 도청당했다고 증언했다.

▽차량 미행 도청 가능성?=2002년 3월 중순 민주당 대통령 경선후보였던 이인제(李仁濟) 의원 측은 “당시 도청당한 통화 내용은 울산 경선을 마치고 광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에서 휴대전화로 박상천(朴相千) 민주당 고문의 휴대전화에 건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정원은 R-2를 주로 서울지역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만약 이 의원의 휴대전화를 도청한 것이라면 R-2가 아니라 CAS 탑재 차량으로 이 의원 승용차를 미행하면서 도청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CAS는 200m 이내의 거리에서만 감청이 가능하다.

물론 국정원이 전화를 받은 쪽인 박 고문의 휴대전화를 서울에서 R-2로 도청했을 수도 있다. ▽여권 인사들은 부인=여권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은 한나라당의 폭로 당시와 마찬가지로 도청당한 사실을 부인했다.

열린우리당 이강래 의원은 “2002년 3월에 지역구 행사 협조 문제로 평소 가까운 사이인 박권상(朴權相) 당시 KBS 사장과 몇 차례 통화했지만, 문건에 나오는 것처럼 노무현(盧武鉉) 후보 지원을 요청한 적은 없다”며 “날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청 문건에 2002년 1월 7일 배기선(裵基善) 의원과 공기업 임원 인사 문제로 통화한 것으로 돼 있는 박양수(朴洋洙)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도 “그런 통화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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