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발언 경위=여권 고위관계자의 재심특별법 제정 발언은 27일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한 모임에서 나왔다. 이날 화제는 자연스럽게 전날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이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말한 ‘사법부의 과거사 사과’ 및 ‘과거 판결 검토’로 모아졌다.
한 참석자가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잘못된 과거사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이 말을 받아 “재심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재심 사유를 확대하는 특별법 제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방침은 노 대통령의 의중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해서도 좀 더 융통성 있는 재심이 가능하도록 해서 억울한 피해자들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한 별도 입법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때 언급한 ‘별도 입법’이 여권 관계자의 재심특별법 발언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용훈 새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대법원 관계자는 여권의 재심특별법 제정 추진에 대해 “일언반구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의 재심청구 사유=현행 형소법 제420조는 아주 제한된 경우에 한해 재심을 허용하고 있다. △원판결의 증거된 서류 또는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이 증명된 때 △원판결의 증언 감정 통역 등이 그 이후의 확정 판결에 의해 허위인 것으로 증명된 때 △원판결의 증거로 사용된 재판이 이후 확정판결에 의해 변경된 때 등 7가지다. 대부분 원래 판결이 그 이후의 또 다른 판결에 의해 사실상 ‘오판’으로 판명 난 경우다.
여권과 시민단체 등이 문제 삼고 있는 대부분의 사건은 이 같은 재심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이들 사건을 여권의 의도대로 끌고가려면 재심청구 사유를 확대하는 수밖에 없다. 재심사유 확대의 구체적인 예로 “원판결 내용이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나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 등 정부 위원회의 조사에 의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논란과 문제점=여권의 이 같은 재심특별법 제정 추진은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법의 가치인 법적 안정성과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
특히 재심특별법 제정이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국민적 합의 없이 정치적 목적을 띠고 일방적으로 진행될 경우 국론 분열과 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논란이 되고 있는 사법부의 과거 판결들 | ||
사건(연도) | 내용 | 비고 |
진보당 조봉암위원장 사건(1958년) | 북한 정치자금을 진보당 총수 조봉암에게 줬다는 간첩 양명산의 진술로 조봉암에게 사형 선고. 양명산은 “고문에 의한 자백이었다”고 진술을 번복했으나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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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재건위사건(1975년) |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북한의 조종을 받는 지하조직으로 판단. 피고인의 진술 기록 조작 논란. 형 확정 20시간 만에 사형 집행해 ‘사법살인’으로 낙인 | 7월 재심 개시 여부 결정 위한 법원 심리 1년 8개월 만에 재개 |
김대중 내란음모사건(1981년) | 5·18민주화운동 배후로 김대중 씨를 지목해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사형 선고 | 5·18, 12·12 대법원 판례 변경 뒤 2004년 재심서 무죄 선고 |
강기훈 유서 대필사건(1992년) | 강기훈이 자살한 김기설의 유서를 대신 써 줬다는 자살 방조 혐의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 근거로 법원에서 유죄 확정 | 재심청구 검토 |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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