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원의 주장은) 재경부에 대한 모독이다.”(한덕수·韓悳洙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4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박 의원과 한 부총리 사이에 고성(高聲)이 오가는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공방의 초점은 금산법 중 대기업집단 내 금융계열사가 비(非)금융계열사 지분 5%를 넘겨 보유할 수 없도록 한 부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금산법 개정안의 24조 부칙은 5% 초과 지분은 의결권을 제한하고 강제 매각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강제 매각 조항이 만들어지기 전에 갖고 있던 초과 지분에 대해서는 의결권만 제한하기로 했다.
반면 박 의원은 과거에 갖고 있던 초과 지분에 대해 정부가 매각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별도로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현재 주요 대기업집단 중 이 법의 적용을 받는 곳은 삼성그룹뿐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3%를,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를 갖고 있다.
박 의원은 “재경부가 매각명령이 위헌소지가 있다는 삼성 측 법무법인의 의견만 참고하고 매각명령도 가능하다는 금융감독원 법무팀의 의견은 무시했다”면서 “재경부가 편중돼 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한 부총리는 “5% 초과 지분의 의결권 제한도 위헌소지가 있다고 주장한 삼성 측 법무법인의 의견과 (초과분 강제매각만 위헌으로 본) 정부 개정안은 명백히 다르다. 사람들을 오도하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한편 이날 오후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금산법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입법 과정에서 삼성 이외에 참여연대의 의견도 들었다”면서 “입법 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소명자료를 참고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문 수석은 “금융감독위원회가 독자적으로 법무법인에 의뢰한 것도 있다”면서 “정부부처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 일단 재경부의 손을 들어줬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靑, 금산법 개정과정 조사결과 발표
청와대는 4일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24조가 신설된 1997년 3월 이전에 삼성생명이 한도를 초과해 삼성전자 주식을 취득한 것에 대해 “당시 부칙의 해석상 승인받은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이날 금산법의 개정 경위를 조사한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금산법 24조는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다른 계열사와 합쳐 5% 이상 소유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제한을 두고 있다. 이 조항은 이 때문에 ‘5% 룰’로 불린다.
문 수석은 “다만 그 당시의 소유비율(8.55%)까지 모두 의결권을 인정할 것인지 또는 현재 보유비율(7.25%)까지만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선 (금산법 개정 경위 조사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문 수석은 금산법 24조 신설 이후 ‘5% 룰’을 위반해 한도를 초과한 주식을 취득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카드에 대해선 “일정 유예기간을 부여한 뒤 처분명령까지 국회에서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다만 (처분명령까지 가는 것은) 위헌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충분히 참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의견대로라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7.25%를 그대로 보유하면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카드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 중 5% 초과분에 대해선 의결권 제한은 물론 ‘일정 유예기간 후 처분’ 가능성까지 열어 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민정수석실의 보고를 받은 뒤 국무회의에서 “여러 대안이 입법정책적으로 검토 가능하므로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함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고 문 수석이 전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정부안을 제출한 뒤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에 추후 당정협의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한 후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며 “국민의 법 감정이나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안이 만들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금산법 개정과정을 조사한 결과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부처의 협의가 다소 미진했고 절차상 문제는 있었지만 문책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해 주의조치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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