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동안 동문회에 나오지 않았다. 학교 발전에 실제로 도움을 주는 동문들은 뒷전이고, 공무원 동문들만 신주 모시듯 하는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앙부처 국, 실장 한 사람만 나타나도 그를 에워싸고 아부성 덕담을 하기에 바쁜 모습이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해, ‘자랑스러운 ○○인 상’도 공무원 동문에게 돌아갔을 때 그는 씁쓸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상이라면 실제로 뭔가를 기여한 사람에게 줘야 하는 것 아니냐. 공무원들이 보탬이 된 게 뭐냐. 학교의 명예를 높였다고? 그럼, 우리들은 명예를 훼손했나.”
그렇다면 다른 학교 동창회는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상을 주었을까. 경기고는 2000년부터 올해까지 16명에게 ‘자랑스러운 경기인 상’을 주었는데 공무원 출신은 고건 전 국무총리가 유일하다. 경복고도 ‘경복 동문대상’ 수상자 14명 중 유태흥 전 대법원장과 한우석 전 프랑스 대사만 공무원 출신이다. 서울고는 1991년부터 작년까지 30명에게 ‘서울인 상’을 줬는데 이시윤 전 감사원장, 전윤철 감사원장, 송광수 전 검찰총장 정도가 공무원 출신이다. 이들 3개 고교 모두에서 학자 기업인 의사 예술가 언론인 체육인 등이 수상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대전고는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최형섭, 김시중 씨와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가, 전주고는 8명의 수상자 중 신건 전 국정원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광주일고는 18명 중 김동신 전 육군참모총장, 이수용 전 해군참모총장, 이기호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이 대표적인 공무원 출신으로 상을 받았다. 경남고는 12명의 ‘용마대상’ 수상자 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천 전 해양수산부 장관만 공직자 범주에 들었다.
공무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 중 하나인 경북고 동창회는 그런 상 자체가 없었다.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 없어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부산고 동창회 관계자는 “우리는 사회적 지명도보다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동문에게 상을 준다”는 말로 수상자 명단을 대신했다.
명문고일수록 공직자 출신 수상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이는 그만큼 인재풀이 넓고 다양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교를 빛낸 인물들이 사회 각 분야에 널렸는데 굳이 공직자를 찾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도 짧고 졸업생들의 사회 진출도 신통치 않은 학교라면 사정은 다르다. 고시 합격자 한 사람만 해도 귀하고 소중한 자산일 터이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관직(官職)이 ‘자랑스러운 ○○인 상’을 주는 보편적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건국 이후 우리 현대사는 줄기차게 ‘관(官) 우위의 사회’를 해체해 온 과정이었다. 관의 독주를 견제하고, 관의 영역을 민(民)의 영역으로 바꿔 나가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그것이 곧 민주화였고, 세계화였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큰 정부론’은 역사의 퇴행이다. 반(反)개혁적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와도 맞지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공무원 수를 늘려 가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민의 참여’를 넓히겠다고 한 참여정부가 거꾸로 관을 키우고 늘렸으니 스스로 정권의 정체성을 부인한 셈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日常)에서부터 관 우위의 퇴행적 잔재들을 털어내야 한다. 장차관 출신이 아니면 어떻고, 사회적 지명도가 떨어지면 어떤가. 진실로 모교와 고향 발전에 헌신해 온 사람, 권력 주변에 얼씬거리지 않고 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 그들이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인’이 되는 것이 백번 옳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학교건, 국가건 ‘관’으로는 더는 안 된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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