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정보가 필요했던 당시 정권 실세는 누구였을까. 도청을 주도한 김은성(金銀星·구속) 전 국내담당 차장은 누구에게, 어떤 도청 정보를 전달했던 걸까.
▽“대공 정보까지 정치권 실세들에게 보고”=검찰 조사를 통해 김 전 차장이 정권 실세들에게 건넨 정보 중에는 ‘대공 첩보’까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 건네진 정보가 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정보에 국한되지 않고 국가 안보 관련 정보까지 포함됐음을 보여 주는 대목.
검찰 관계자는 “DJ 정부 시절 국정원의 도청이 그간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도청 자체도 무차별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전 차장이 재직 시절 정치인 등 국내 주요 인사의 휴대전화를 불법 감청해 ‘통신 첩보’ 수집을 하도록 적극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의 감청담당 부서 전현직 직원들은 하루 평균 30∼40건의 도청을 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수천 건의 도청이 이뤄진 셈이다.
이 중 중요한 ‘통신 첩보’는 따로 분류해서 김 전 차장을 통해 국정원장들에게까지 별도 보고서 형식으로 올라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같은 국정원의 도청이 DJ 정부 시절 상당 기간 ‘관행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도청 보고, 어디까지 됐을까=김 전 차장은 “국가통치권 보호 차원에서 도청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시 정권 핵심 실세들에게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인사는 권노갑(權魯甲)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 검찰 수사에서 김 전 차장이 당시 권 씨의 2선 후퇴를 요구하던 민주당 소장파들의 통화 내용을 도청하도록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 전 차장은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金弘一) 당시 민주당 의원과도 관계가 밀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까지 밝혀진 불법 감청 실태를 감안하면 도청의 구체적 사례가 엄청나게 많을 것으로 보인다”며 “김 전 차장이 도청을 통해 얻은 정보를 특정 정치인에게 정보보고 형식으로 계속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전 차장이 2001년 12월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직후 곧바로 도청 사실 은폐를 시도했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검찰은 도청 정보가 국정원장 등 공식 라인뿐 아니라 김 전 차장에게서 전달받은 정치권 실세들을 통한 비공식 라인에 의해서도 청와대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김 전 대통령이 국정원장이나 이들 정권 실세 등을 통해 ‘보고’를 받았더라도 ‘도청의 산물’이었다는 사실까지 알았는지는 미지수다.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씨 등 당시 국정원장들도 사법 처리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같은 도청 정보가 ‘통신 첩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매일 보고된 만큼 “도청 정보인 줄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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