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승인서’로 무차별 도청]DJ, 서명때 도청 몰랐나

  • 입력 2005년 10월 11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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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책임자 처벌하라”시민단체 회원들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 책임자 수사 및 처벌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도청 책임자 처벌하라”
시민단체 회원들이 10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 책임자 수사 및 처벌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법원의 영장이 없어도 대통령의 승인만 받으면 감청을 할 수 있는 규정을 악용해 온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확인되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당장 국정원의 감청승인신청서에 직접 서명을 했을 가능성이 큰 DJ의 책임 논란이 일면서 검찰 수사는 한계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통령 승인’ 월권·남용=서울중앙지검 도청 수사팀은 8월 29일 서울 혜화, 신촌 등 7개 KT 전화국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의미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 국정원이 전화국에 제출한 대통령의 감청승인서였다.

이 승인서에 기재된 전화만 감청했다면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이 자료는 역으로 국정원이 대통령 승인을 구실로 무차별적인 도청을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은 대통령의 승인 등을 받아 합법적인 감청을 하는 과정에서 일부 ‘끼워넣기식’으로 불법 감청을 했다고 발표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통신비밀보호법 제7조 1항은 ‘국가안전보장에 관하여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 한하여’ 법원의 영장 없이 대통령 승인만으로 감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DJ 정부 시절 도청을 주도한 김은성(金銀星·구속)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 등에 의해 도청 대상이 된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등은 이 조항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결국 국정원이 DJ에게서 받은 감청승인은 김 전 차장 등에 의해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도청에 이용된 셈이다.

국정원은 매년 2, 6, 10월 각 정보·수사 기관에서 제출한 감청계획서를 종합해 국정원장 명의의 ‘대통령 승인신청서’를 작성한 뒤 이를 ‘2급 비밀’로 분류해 대통령에게 승인 신청을 한다.

이런 식으로 감청 승인을 받은 대상자는 매번 40∼50명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 결과 김 전 차장 시절 국정원 감청팀은 하루 평균 30∼40건의 도청을 했으며, 이 중 중요한 내용은 ‘통신첩보’ 보고서로 국정원장들에게 보고된 것으로 확인됐다.

▽DJ 책임 논란=통신비밀보호법에는 대통령 감청 승인 절차와 관련해 위임 전결 없이 대통령이 직접 서명하도록 돼 있다.

DJ도 과거 국정원의 감청승인신청서에 직접 서명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김 전 차장 등이 당초 대통령 승인 범위를 넘어서 감청을 남용한 데 대한 DJ의 책임 문제가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DJ가 도청 사실을 알고도 서명했다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정원은 통상 감청승인신청서에 전화번호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이 도청 사실을 알 리가 없다는 것.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서명한 승인신청서가 광범위한 도청에 활용된 것으로 드러난 만큼 도의적 책임까지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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