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불씨’ 정치권 전면전 비화

  • 입력 2005년 10월 19일 03시 00분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지휘 파문을 둘러싸고 여야는 18일 당 대표가 직접 나서 막말을 주고받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다짐했다(왼쪽).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구보수 세력이 색깔론 총궐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김동주  기자
동국대 강정구 교수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지휘 파문을 둘러싸고 여야는 18일 당 대표가 직접 나서 막말을 주고받았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다짐했다(왼쪽).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수구보수 세력이 색깔론 총궐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김동주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밝혀 달라. 자유민주 체제를 지키겠다는 것인가, 무너뜨리겠다는 것인가.”(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

“박 대표는 냉전시대의 반공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혼동하는 것 아니냐.”(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

동국대 강정구(姜禎求) 교수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불꽃을 튀기고 있다. 상대를 자극하는 극단적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누가 이기나 한판 붙자”는 태세다. 정국은 극심한 혼미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한나라당, “정체성이 뭐냐”=박 대표는 18일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사전에 발언 수위를 조정했음에도 그 강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강정구 교수의 불구속 수사가 국가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아니다
잘 모르겠다


▶ 난 이렇게 본다(의견쓰기)
▶ “이미 투표하셨습니다” 문구 안내

“이 정부는 간첩 활동을 했던 사람을 민주인사로 둔갑시키고 재독학자 송두율(宋斗律) 씨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적화통일을 막았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을 ‘민족의 원수’라고 부르며 동상을 철거하려 해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등의 얘기가 쏟아졌다.

박 대표는 “국립묘지도, 4·19정신도, 광주 5·18정신도 함께 안고 가야 할 소중한 역사지만 만경대 정신까지 품고 갈 수는 없다는 게 한나라당의 확고한 원칙이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그러면서 노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6·25는 통일전쟁’이라는 강 교수의 발언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밝히라는 것. 박 대표가 대통령의 정체성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태도에 따른 대응 로드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가 이날 “구국운동을 벌여 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상황 전개에 따라 보수세력과 연대해 장외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나라당은 특히 여권이 강 교수 문제를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로 연결시키고 궁극적으로 북한과의 ‘거래’를 통해 정국 대반전을 노리고 있다고 보고 이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청와대, “색깔론 총궐기 중단하라”=청와대는 이날 이병완(李炳浣)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한 정무점검회의에서 박 대표의 기자회견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정하고 ‘청와대 입장’ 문안도 정리했다.

청와대의 이번 대응은 지난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빨치산 민주화 운동 기여 인정 당시 박 대표가 정체성 공세를 폈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당시만 해도 청와대 대변인의 간단한 발언으로 대응하는 데 그쳤지만 이번엔 ‘수구독재’ ‘색깔정당’ 등 원색적인 표현을 구사하며 강력 반박하고 나선 것. 특히 유신 시절인 1975년 인혁당 사건 등을 거론하며 ‘한나라당=유신독재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김만수 대변인은 이날 회의에서 오간 참석자들의 대화록까지 공개하며 박 대표와 한나라당에 대한 격앙된 감정을 드러냈다.

“국민을 모독하는 오만불손한 독선이다”, “박 대표의 발언을 보니 유신시대 ‘구국봉사대’가 연상된다”, “한나라당이 (과거 행적을 아는) 국민의 기억력까지 망각했으니 소가 웃을 일이다”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는 것.

청와대의 강경 대응에는 강 교수 사건으로 김종빈(金鍾彬) 검찰총장이 사퇴한 데 따른 검찰 내 반발 기류가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에서 한나라당의 공세를 방치할 경우 임기 후반기 국정 운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절박감도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선 청와대가 이 기회에 박 대표와 한나라당을 ‘낡은 유신독재세력’으로 몰아붙여 정국을 ‘낡은 세력 대 새로운 세력’ 구도로 재편하고 개혁 성향의 여권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기 위한 카드로 대야 강경 공세를 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열린우리당 문희상(文喜相) 의장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군부독재와 함께 무덤에 묻혔어야 할 색깔론의 망령 부활’ ‘장외투쟁 불사 선언은 국민을 협박하는 처사’ ‘21세기판 신공안정국’ 등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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